사람이 사람을 판단하는 제일 조건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덕망일까? 인품일까? 외모일까? 가끔은 겉모습으로 판단하려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누더기 옷을 입은 사람의 머리는 돌로 가득 차 있을까? 하루 이틀 샤워 아니 했다고 멀리 하면 되는가? 그 몸에 향수 한 방울 떨어뜨리면 되는 일 아닌가? SKY 대학 나온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졸업 후 논문을 몇 편이나 쓰고,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가 중요한 것인데 사람들은 그런 건 간과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손수레에 폐지 가득 싣고 언덕을 오르는 신중년(65세~79세)의 이마에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밀어주면 좋으련만… 주위의 이목이 그리 중요한가? 목에 두른 넥타이를 와이셔츠 속에 밀어 넣고 밀어주면 되는 일이지. 무슨 무슨 사연이 있었을 거다. 겉모습엔 세월이 지나간 자취가 냇물처럼 흐르고 있는데 내면을 들여다보았는가? 이토록 많은 폐지를 싣고 고물상에 가면 얼마마한 돈이 되는지? 지난 과거는 모두 잊고 오늘을 열심히 사는 이 촌로에게 박수를 보낸다. 잠시 밀어주었을 뿐인데 사용하는 언어가 매우 세련되고 고상하다. “댁도 나이가 든 것 같은데 밀어주니 고맙소. 덕분에 가파른 언덕길을 쉽게 올라왔소이다. 고맙소.” 얼굴에 함박웃음이 인다.
그렇다고 외모에 신경 쓰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옷치장에 신경 쓰라는 말이 있다. 고급스런 의상을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수수하면서도 자신에 어울리는 의상이 자신을 고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특히 나이를 먹을수록 그래야 한다.
전해 들은 일화가 있다. 음미해 볼 만한 이야기다. 조지 워싱턴(1732-1789)이 제대하고 민간인의 신분으로 있던 어느 여름날 홍수가 나자 물 구경을 나갔다. 물이 넘친 정도를 살펴보고 있는데 육군 중령의 계급장을 단 군인 한 사람이 초로(初老)의 군인 워싱턴에게 다가왔다.
“미안합니다만 제가 군화를 벗기가 어려워서 그런데요. 저를 업어 건네주실 수 있을까요?”
“뭐! 그렇게 하시구려.”
이리하여 중령은 워싱턴의 등에 업혀서 냇물을 건너게 되었다.
“노인께서도 군대에 다녀오셨나요?”
“네, 다녀왔지요.”
“사병이었습니까?”
“장교였습니다.”
“혹시 위관급(尉官級)이었습니까?”
“조금 더 위였습니다.”
“아니 그러면 소령이었나 보네요.”
“조금 더 위였습니다.”
“그럼 중령이었군요.”
“조금 더 위였습니다.”
“아니, 대령이었단 말씀입니까?”
“조금 더 위였습니다.”
“아니, 그럼 장군이었네요?”
중령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노인께서는 그럼 준장이었습니까? 혹시 중장이었나요?”
“조금 더 위였습니다.”
“최고의 계급인 대장이있단 말씀이네요.”
“조금 더 위였습니다.”
그의 음성은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처럼 해맑은 촉기가 서려 있었다. 그의 겸손은 군대생활에서 익혀 삭힌 것들이었다. 내를 다 건너게 되자 워싱턴이 중령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자신을 업어 준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육군 중령은 그 텁수룩한 노인이 당시 미합중국의 유일한 오성장군(五星將軍) 조지 워싱턴임을 알아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흔히 막노동을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혹은 차림새가 조금 초라하다거나 몸에 걸친 의복이 다소 남루하다고 해서 사람을 낮춰보는 우(愚)를 범하기 쉽다. 외모만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을 말해 주는 일화(逸話) 한 도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