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에도 등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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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에도 등급이 있다.
  •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시인, 평론가)
  • 승인 2018.03.22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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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시인, 평론가)

대전에는 대학병원이 네 개가 있다. 국립종합대학인 충남대학교 병원, 사립대학교인 건양대학교 병원, 을지대학교 병원 그리고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이 성업 중이다. 이들은 대형종합병원이라서 환자들에게 큰 매력의 대상이다. 한국인의 국민정서는 뭐든 대형규모를 선호한다. 집도 크고 높은 것을 찾고 사람도 덩치가 커야 싱겁다고 비아냥대면서도 믿음직스러워한다. 하다 못 해 호박도 큰 걸 고르고 김치통도 커야 한다는 게 주부들의 욕심이다. 이처럼 큰 것을 좋아하다 보니 병원도 큰 걸 좋아한다.

환자에게 동네 병원은 같잖아 보인다. 대부분 작은 건물에다 의사도 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미덥지가 않은 것이다. 아무리 전문의 간판을 내걸었어도 성큼 들어 서지지 않는다. 그게 으레 우리네 공통의 대형선호경향이다. 요즈음 규모도 웬만하고 다수의 의사가 공동 또는 연합진료를 하는 민간 개인병원이 늘어나고 있어 환자의 진료에 큰 진전을 보여주고 있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환영하고 장려할만한 일이다.

그렇다 해도 많은 환자가 종합병원으로 달려간다. 무작정 큰 병원으로 몰려가는 추세이다. 규정상 종합병원은 제3차 진료병원, 상급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응급실을 악용해서라도 대학병원의 진료를 받는 잔꾀까지 부린다. 하긴 그게 다급한 환자의 절실한 소망에서 시작된다. 아무리 규정이 엄격하다 해도 훌륭한 의술의 혜택을 받고자 하는 환자의 집념은 잔머리를 굴려서라도 시설이나 의료진이 넉넉한 종합병원에 가서 병을 낫게 하고 싶은 욕망을 막기 어렵다. 그래서 대학병원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매력과 위력을 가진 종합병원, 특히 대형 대학병원이 하나 같이 우수하고 특수한 의료기술의 전당이라고 맹신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름은 똑 같이 대학병원으로 그 간판이 위세당당하다. 그러나 그렇게 만만하게 모두가 최고 양질의 의료기관은 아니다. 거기에도 등급이 있다. 대학의 서열화를 비난하지만 그걸 걷어치울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대학병원의 서열화도 그냥 비켜가서는 안 된다. 분명히 대학병원의 진료성적표가 존재한다. 대학병원이라도 교육병원이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시스템이 우선 다르다. 

국립서울대학교 병원은 누가 뭐라 해도 환자가 가장 선호한다. 그런 만큼 실력이 좋은 임상교수를 비롯한 의료진이 권위를 인정받는 수준을 유지한다. 이에 못지않은 사설 종합병원으로 서울아산병원을 비롯해 서울중앙병원이나 가톨릭성모병원도 전국의 환자가 우선 찾아가고 싶어 하는 병원들이다. 대전에서는 어떤가. 말할 것 없이 국립대학병원이 환자가 찾아가는 첫 번째 병원이다. 얼마 전에 내 집사람도 충남대학교에서 다리골절 부분의 재수술을 받고 입원치료중이다. 을지대병원에서 받은 수술의 후유증이 너무 심해서 선택한 방법이다.

4년 전 집사람이 화장실에서 넘어져 왼쪽 다리가 부러졌다. 119에 긴급구호요청을 했다. 신속히 달려온 구급대원들에게 충남대병원으로 가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거절당했다. 마침 퇴근시간이라서 혼잡한 교통 관계로 을지대병원으로 가겠다고 한다. 거리가 조금 가깝다는 이유로 내 요청을 들어 주지 않았다. 와준 것만으로 감지덕지하는 판에 우겨대지 못했고 긴박상황에 내 주장만 늘어놓을 수 없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병원의 조치를 기다리는 마음은 다급하기 마련 아닌가. 꽤 많은 시간을 초조하고 불안하게 기다리자니 무던히도 짜증스러웠다.

무려 2시간 가까이나 돼서야 간호사가 갖가지 검사시행에 들어간다고 귀띔한다. 그나마 고마워서 두 손 모아 감사의 말을 연발했다. 생전 처음 겪는 일이라 긴장감에 휩싸여 두서를 차리지 못 한 자신이 부끄럽고 초라해진 채 수술진행상황을 지켜보느라 신경이 곤두섰다. 허기도 잊을 정도로 긴장과 공포의 시간이 흘렀다. 수술종료와 회복상태를 알리는 현황판을 응시하는 눈도 피로에 시력마저 약화되는 지경이었다. 회복시간이 다른 환자들 보다 한참 더 걸린 뒤 의사 까운의 젊은 사람이 밖으로 나와 “김정의 환자 수술 잘 됐습니다”라고 크게 소리친다.

    

우리 가족 모두는 환호성을 지르며 성공적인 수술을 확신하고 안심했다. 집도의가 엑스레이 사진으로 수술부위와 주의사항 등을 설명할 때 정말 고맙기 이를 데 없었다. 그의 노고에 감사하고 감탄했다. 환자는 그러나 선망후실(先忘後失) 상태에 빠졌다. 정신이 다 빠져 나간 사람이 되어 버렸다. 매우 총명했던 사람의 실체가 사라졌다. 자꾸만 엉뚱한 소리를 하는 치매환자 같다. 마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멍청이가 된 것이다. 게다가 YWCA에서 추천한 간병인 여자가 환자의 보호임무를 제대로 하지 않아 환자에게 욕창(褥瘡)이 생겼다. 병원도 욕창주의 경고문마저 걸어 놓지 않았다. 이건 엄청난 수난이었다.

중증이 돼버린 욕창수술을 요청하니 충북대병원 퇴임하고 이 병원에 초빙됐다는 의사가 수술을 못 한다고 손을 들었다. 환부가 너무 커서 겁을 먹은 눈치였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얼핏 따지면 의사는 갑(甲)이고 환자는 을(乙)인 셈이다. 환자는 의사 앞에 가면 작아지기 마련이다. 시세 말로 쫄아 든다. 그래서 그 의사의 존엄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나 더욱이 교수라는 동종직업의식에서 모든 걸 참았다. 후일 충남대병원에서 성형외과 교수들이 애를 써 그 욕창 자리를 완쾌해 주었다. 야구공만큼의 크기로 번진 환부를 성형하고 3년이 지났다.

첫 번 수술을 받고 4년째가 되면서 그동안 재활 치료를 하다가 조금도 나아지는 기색이 없고 더 악화하는 조짐이 보여 충남대병원에서 재수술을 감행했다. 고령인 환자의 건강이 걱정스러웠지만 의사 교수들의 능력과 판단력을 믿었기 때문에 어렵사리 결단을 내렸다. 골절부위에 삽입한 쇠붙이가 지나치게 길었던 것을 제거 교체했다. 이번에는 선망의 기운도 없이 수술 후유증이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을지대병원에서 겪었던 몹쓸 후유증이 전무하다는 사실에 감복했다. 충남대병원 정형외과 의사들에 대한 신뢰도가 상승일로라는 사실에 감격한다.

일찍이 지인 한 사람이 을지대병원에서 PET CT로 암 검진을 받았다. 암의 증상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아 안심했다.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에 마음 편히 있다가 갑자기 각혈을 하는 바람에 충남대병원에서 같은 기계로 검진을 받았다. 폐암 진단이 나왔다. 똑같은 대학병원에다 똑같은 기계로 검진을 했는데 전자는 암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 한 반면 후자는 암의 존재를 발견한 것이다. 왜 다른가. 왜 차이가 생기나. 기계로 찍은 화상의 판독(reading)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지인은 충남대병원에서 방사선치료를 받고 6년을 생존했다.

사람도 사람으로서의 동일성이나 평등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막상 살아가는 길에서는 사람이 다 똑같지 않다. 습성, 능력, 체구, 체력, 감성, 지능, 용모, 취미, 특기 등 모든 부분이 한결 같지 않다. 다양성이라고 일컫듯 천차만별로 구분되는 게 세상 만물의 편재성(偏在性)이다.
어떤 대학병원은 언젠가 환자를 바꿔서 수술한 대형의료사고를 저지른 적이 있다. 대학병원이라면서 그런 엉터리 의료행위로 유명해지는 경우는 도저히 웃고 넘길 수 없잖은가. 내가 당한 고통은 을지대병원의 시통치 않은 의술이 빚은 일종의 비극이었다. 지금도 기가 막힌다. 내가 을지대병원을 몇 단계 낮은 등급으로 치부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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