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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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거리
  • 文 熙 鳳(시인`평론가)
  • 승인 2018.04.0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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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熙 鳳(시인`평론가)

사랑은 열 중에 아홉을 주고도 나머지 하나를 더 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것이다. 사랑은 주는 만큼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며, 받는 것만큼 행복한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랑에도 적당한 거리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움이 쌓이다 보면 더욱 진실한 사랑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침마다 카톡을 날려주는 지인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문자를 날려주는 지인이 있어 좋다. 그와 나와는 비록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 하더라도 지척에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대전에 살고, 지인들은 울산에 살고, 고양에 살고, 이천에 살고, 광주에 살고, 대구에 산다.

아가 만나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러나 카톡의 도움을 받으면 바로 소식을 전할 수 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선물이겠다.

나무들이 올곧게 잘 자라는데도 꼭 필요한 거리가 있다. 나는 이 거리를 ‘그리움의 거리’라 부르고 싶다.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바라볼 수 있지만 절대 간섭하거나 구속할 수 없는 거리, 그래서 서로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거리가 꼭 필요하다.고슴도치를 보면 안다. 몸에 난 뾰족한 털이 너무 가까이 하지도, 너무 멀리도 있게 하지 않는 그 거리가 ‘그리움의 거리’가 아닐까? 특히 사랑의 솜씨가 서툰 사람들에게 이 거리는 매우 의미심장한 뜻을 제시해 주리라 생각한다.

‘쉬 더운 방, 쉬 식는다.’는 말이 있다. 그리움도 간격을 유지해야 오래 간다. 주말부부인 사람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면 애틋한 감정이 최고조에 달해 얼마나 좋을까. 나도 4년 간 주말부부로 살아본 경험이 있다.

몸이 좋지 않은 아내를 두고 멀리 떠나 있을 수밖에 없었을 때 나는 많이 고민했다. 절망은 도를 넘으면 좌절로 이어진다. ‘여보, 나 이렇게 아픈데 승진 안 하면 안 돼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많이 고민했다. 1년 떨어져 있다가 다시 합치긴 했지만 그 기간이 나에게는 악몽의 시간이었다.

월요일 새벽 집을 떠나 임지에 도착하면 우선 전화부터 했다. 그리곤 편지를 썼다. 오후에 또 전화,... 나는 그리움을 그렇게 삭였다. 그리고 2년, 또 다시 1년을 그렇게 생활했다. 4년 간 쓴 편지가 책 두 권이 되었다.

지금은 그 편지들을 제본하여 책꽂이에 잘 모셔두고 있다.

그리움의 거리가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그 그리움의 거리가 우리 부부를 더욱 견고하게 묶어주는 밧줄 구실을 했다. 가장 힘든 시기를 나는 인생 역전의 수련기로 생각했다. 정녕 아내를 그리워하는 것이 삶의 전부인 것이라 생각했다.

하나의 꽃 안에 수술과 암술이 있어 가까이서 서로 만날 수 있는 채송화를 나는 그때 발견했다.

그 ‘그리움의 거리’로 하여 사랑은 더욱 튼실한 열매를 맺었고,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며 정성껏 보살피게 되는 결과를 만들었다. 조금 떨어져 있다 보니 더욱 진한 사랑을 하게 되고, 상대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버팀목, 주춧돌은 나를 희생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다. 배려와 희생, 봉사, 이런 단어들이 발을 옮길 때마다 신발 밑창에서 산뜻한 음계로 튀어나올 때 나는 행복감을 느낀다.

사랑은 그리울 때가 더 아름답다.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에 목마르던 날들, 항상 보살의 마음으로 살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체취가 느껴질 때면 그리움에 아파했던 날들이었지만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사랑할 수 있어 행복했고, 눈시울 적시며 그리워하는 순간마저도 행복했다.

사랑은 함께 하는 행복도 있겠지만 그리움을 느낄 때가 더 아름답다는 걸 알았다. 사랑하는 사람 볼 수 없기에, 만날 수 없기에, 사랑은 그리울 때가 더 아름답다는 걸 알았다. 애절하게 보고플 때가 사랑은 더 아름다운 거 같다. 고운 빛을 내는 것 같다. 지금까지 바라보던 밤거리보다 더 화려하게 별들이 뿌려져 밝게 빛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거리는 부모, 친구, 지인들과의 사이에서도 그대로 통용되겠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쉽게 싫증을 느끼게 되고, 너무 멀면 또 관계가 소원해진다. 적당한 거리, 그리움의 거리는 꼭 필요할 것 같다.
어떤 아파트 단지에 가보면 아파트들이 너무 밀집되어 있어서 하루종일 햇볕 한 번 안 들어오는 곳도 있다.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파트들이 햇볕을 보지 못해 아쉬워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구속하듯 구속하지 않는 듯, 그것을 위해 서로를 그리워할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일은 정말 필요할 것 같다. 조물주는 기다렸다는 듯 손수건을 꺼내 그리움에 지쳐 흘리는 내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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