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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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백
  • 文 熙 鳳(시인·평론가)
  • 승인 2018.06.22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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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 熙 鳳(시인·평론가)

  일주일이면 두세 권씩의 시집이나 수필집을 받는다. 나는 보내준 분의 정성을 생각해 우선 제목부터 살펴본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가슴에 감동의 파도가 인다. 시인이나 수필가는 언어조련사이며 언어기능사자격증 소지자 같다. 어쩜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보통의 일들을 그렇게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는가 하고 감탄한다. 어쩜 저렇게 훌륭하게 일상의 이면을 신선한 시각으로 그려내는가 하고 감탄한다.

  아무나 생각해낼 수 없는 것을 독창적인 표현으로 독자를 사로잡으니 책을 펼치자마자 끝까지 단숨에 읽어나간다. 그러면서 나 자신을 칭찬한다. 거기엔 인내라는 게 필요 없다. 재미와 감동이 나를 희열의 호수에 침잠시키기 때문이다. 하긴 내가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기에 가능할 것이다.

  문인이라면 누구나 그만큼의 책 선물을 받는다. 보내준 분의 수고와 정성 이전에 생각할 것이 있다. 그 시집이나 수필집을 만들기까지 거기에 쏟은 각고의 노력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

그가 창출해내는 가치는 상상 이상이다. 그러나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거나 협소하다면 문제가 된다. 어떤 시인은 ‘낡은 집’이란 시집이 자신이 만난 시집 중에서 가장 완벽한 시집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얼마나 감동적이었으면 그런 말을 했겠는가?

  흔히 ‘사랑의 체험은 남의 말을 듣기 위해 필요하고, 고통의 체험은 그 말의 깊이를 느끼기 위해 필요하다.’고 한다. ‘한 곡의 노래가 울리기 위해서도 듣는 이의 마음속엔 그 노래가 울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나도 이런 세상 이야기를 듣고 볼 수 있는 귀가 있고, 눈이 있다면 좋겠다.

  질투 이기심 같은 것으로 꽉 채워져 있는 마음속엔 아름다운 음률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없을 것이다. 주위를 살펴봐도 안다.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치고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말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이라도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는 그 음악이 그저 소음으로 들리지 않겠는가? 그런 마음의 여백이 없는 사람이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하고,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고통의 체험이 없는 사람은 마음속에 무엇인가를 채울 수 있는 아량과 깊이가 부족한 사람이겠다. 고통은 순간에 지나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 고통을 나에게 주어진 신이 주신 선물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인다면 십중팔구 그는 그 고통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둘째의 등록금과 발가락 나온 운동화가 어른거린다는 가난한 세월을 얘기할 수 있는 것도 고통의 체험이 있는 사람에게나 가능한 것이다.

  고통은 인간을 성숙하게 하고 겸허하게 자신을 비우게 한다. 마음속에 빈 공간이 없는 사람에겐 감동적인 시나 아름다운 음악도 울림을 줄 수 없다. 여인이 테이블을 닦고, 놋그릇을 닦을 때 그 물질을 닦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닦는 일이라고 생각해 보았는가? 그 여인의 손바닥과 닦이는 물체 사이에 완전한 양해와 우정이 오간다 생각해 보았는가? 세상을 살다 보면 고락(苦樂)도 있고, 애로(哀怒)도 있다. 그걸 잘 용해시켜 받아들이는 것은 순전히 자기자신의 몫이다.

  마음의 여백이 없는 삭막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잘난 줄 착각하고 용서와 화해에 인색하다. 서정적인 글이나 율동미가 넘치는 음악을 대했을 때 그것에 나 자신을 투영시킬 수 있는 사람은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는 사람이다.

마음의 여백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사람은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만 인정해 주길 바란다. 정갈한 달빛 아래 벌어지는 갈대의 춤사위. 갈대가 자신을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알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겸손, 배려, 인정 같은 것들로 가득 채운 사람은 절대로 잘난 체하지 않는다. 산새들이 합창하며 산을 흔들고 있다.

  2005년 입적한 법장(法長) 스님의 ‘나에게 바랑이 하나 있는데, 담아도 담아도 넘치지 않고, 주어도 주어도 줄어들지 않는다.’는 말씀이 새록새록 내 뇌리에 큰 울림을 주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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