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리 죽기 살기라 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상대는 어쨌거나 인민군 내무소장이다. 점령군이다. 피정복자가 덤벼들 대상이 아니다. 너무나 당차고 돌연한 행동에 아연실색한 핫바지들은 마냥 떨고만 있다. 적군의 군인이지만 이름이 내무소장이고 장교이다. 그는 그나마 침착성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어쨌거나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엉겁결에 정신을 차린 내무소장의 권총이 학생의 배꼽을 짓누른다. 그의 입에서 불쑥 나오는 말 “요 간나 새 ... ” 그 순간 일갈대성이 터진다. 학생의 우렁찬 목소리가 지축을 흔든다. “공화국 헌법에 이런 것도 있소? 철사 줄로 묶는 법이 있소?” 인민군은 왼 손으로 자기 모자를 벗는다. 권총을 밑으로 내리며 모자로 학생의 머리를 툭 친다.
그러면서 대꾸한다. “이 보라우. 우리네 공화국 헌법이야 물론, 근데 말이야.....” 학생은 독기 가득 찬 짐승의 눈초리로 인민군을 노려보며 “내 여기 충남 검찰청장을 부를 거야. 그 형님 올 때까지 기다리란 말이야.” 여전히 매섭고 무거운 소리이다. 내무소장의 눈이 휘둥그러진다. 검찰총장이라니. 제 놈이 놀라자빠지지 않을 손가.
학생이 사는 동네는 당시에 빈촌이었다. 호남선 철도가 깔리면서 조성된 마을이다. 서대전역을 중심으로 가난한 근로자들이 모인 곳이다. 일본군대가 들어서자 연고가 없는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일찍이 일본에서 성장한 아버지가 일본의 침략 선구금융기관인 동양척식회사에 근무하던 참에 여기 군부대 옆에 땅을 장만하고 집을 크게 지었다.
그러다 군납에 손을 댄 아버지의 영업능력에 일취월장으로 재산이 불어나갔다. 대구에 본부를 둔 여단 소속 대대급 부대라서 소비물자의 조달이 많은 돈을 벌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변 빈촌의 어려운 집안들을 아버지가 열심히 도와줄 수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아버지의 호기(豪氣)가 몰락 직전의 어느 가구를 구해냈다.
그 집안에는 아들 다섯이 있었다. 둘째 아들이 지금 검찰총장으로 금의환향(?)한 것이다. 얼마 전에 난데없는 이 사람의 출현으로 학생이 놀라기도 했지만 이 다급한 순간에는 그가 더없는 빽이 되었다. 학생은 류 ○열이라는 검찰총장의 실명까지 대면서 내무소장을 욱박질렀다. 그래도 아버지를 부득불 시골로 데려가야 한다고 우겨대는 것이었다.
그때 인민군은 현재 어느 보험회사가 들어선 건물을 충남검찰청의 청사로 사용하고 있었다. 학생이 그곳으로 총장을 찾아 뛰어갔다. 그는 공주 출장 중이었다. 러닝 셔츠바람의 뜀박질은 허사였다. 집에 와보니 아버지가 돌아와 계셨다. 놀래고 반가웠다. 부서진 수침교 보수작업에 동원되어 야간작업을 하고 있던 동네 사람들이 아버지를 구출했단다.
연행해 가는 지족리 인민위원들로부터 아버지를 탈취한 셈이다. 중과부족이었던 그들이 주민들의 설득과 압력에 일단 아버지를 풀어준 것이다. 그게 끝은 아니었다. 자정이 좀 지나서 그들이 다시 집으로 들이닥쳤다. 연약한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힘을 쓸 게제도 아니라 학생 혼자서 버티기는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아버지는 인민위원회 패거리들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날이 새기를 기다리는 마음만이 동동거렸다. 난리나기 이전에도 전화라는 건 큰 회사나 대단한 부잣집 아니면 관공서에서나 볼 수 있는 귀중품이었다. 그 밖의 통신수단은 전무 상태였다. 정보교환 운운하는 건 정말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유일한 빽인 검찰총장이 출장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것도 허망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사직했다. 한숨도 잠을 들지 못한 채 날이 부옇게 밝아왔다.
줄곧 악몽에 시달리다 얼핏 선잠에 빠지는 순간 대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귓전에 울려왔다. 비몽사몽간에 자리를 박찬 학생이 달려 나갔다. 행여 아버지가 오시는 게 아니냐는 벅찬 기대감에 싸여 맨발로 뛰었다. 뜻밖이다. 과수원 아주머니가 서 있다. 엉겁결에 인사말도제대로 하지 못하고 서성대는 학생을 문안으로 끌어안고 들어서면서 귓속말을 한다.
학생의 집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보문산 나지막한 산기슭에는 복숭아과수원이 여러 군데 있었다. 당시 충남지방 대한청년단 단장이 그 중 하나를 소유하고 있었다. 단장은 아버지와 막역한 친구였다. 그 부인이 과수원을 경영하고 있었다. 시내외출을 할 때면 으레 학생의 집을 들르기에 두 집안의 안면은 익숙해 있었다.
둘레를 조심스레 살피면서 아주머니는 시장바구니를 든 채 자리를 뜬다. 지나는 길에 잠깐 친구 아들을 보고 가는 듯한 행색이다. 학생은 그러나 손이 떨리고 발이 꿈쩍을 않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옴짝 달싹 못 하고 있다. 웬 일인가. 무슨 말을 들었기에 그런가. 호기(浩氣)찬 가슴을 자랑하던 학생이 무에 그리도 놀랬다는 건가. 그 마저도 난리 통이란 말인가.
윤 기 한(시인, 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