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었다고 괄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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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었다고 괄시하는가
  •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 승인 2019.07.19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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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평론가)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텔레비전 밤 9시뉴스가 막 시작된 순간이다. 학생영화제작자들이 사회적 비극이 된 학교폭력현황을 촬영하는 장면이 뉴스로 방영되고 있지만 서둘러 수화기를 들었다. 무슨 긴급전화인가 싶어 걱정스런 마음이 앞섰다. 한데 뜻밖에도 “한국갤럽입니다. 20-30대 남자가 있으면 바꿔주세요”라는 젊은 여인의 목소리가 송화기를 통해 귓전을 울린다.

수신자의 응답이 늙은이의 음성이라는 것을 잘도 챙겨 들어 그런 말을 했나 보다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불쾌했다. 아무리 무작위표본(Random sampling)조사를 위한 전화방문이라해도 한밤에 다짜고짜 젊은이를 찾는다는 게 무례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국민의 여론을 조사하는 마당에 젊은 사람만이 그 대상이라는 게 언짢을 수밖에 없잖은가. 따라서 그런 조사라는 게 공평하고도 보편한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인지 아리송하고도 궁금했다.

젊은이는 생각하는 동물이고 늙은이는 지각없는 갈대란 말인가 하는 의문도 생겼다. 청년의 기백이야 노인의 기력을 넘어선다는 건 물론이다. 그렇다고 해서 젊은 의견만이 여론의 진수란 말인가 하는 노여움도 발동했다. 젊은 사람만을 여론조사기관이 선호하는 조사라면 그거야말로 도통 믿을 수 없는 말장난일 뿐이다. 여론추세를 거창하게 발표하면서 어김없이 첨부하는 조사의 신뢰수준이 어떻고 하는 공수표 표방마저 아무리 잘 봐줘도 허구적인 변명에 지나지 않다. 믿어달라는 애걸복걸인 게 분명하기에 되레 안쓰럽기까지 하다.

더구나 전화기라는 건 무생물 기계이다. 전선을 타고 흘러온 소리만으로 젊고 늙은 것을 구별하는 재주가 참으로 기막히구나 하고 감탄하다가도 그 몰상식하고 비인간적이며 비과학적인 사고행위가 괘씸하기 이를 데 없어 「한국갤럽」의 멍청하고도 엉뚱한 시스템과 비윤리적인 대인조사방식을 엄중히 사회에 고발한다. 늙은 인권을 존중할 줄 모르는 오합지졸에는 불효자식의 개탄이 뒤따르기 십상이다. 그러기에 정의와 발전과 번영이 그런 집단을 찾을 턱도 없을 게다.

여론조사의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어 직접적인 형태로서 대면방식(Face to face)이 채택되면 피조사대상과 마주 접해서 표정과 표현과 행위 등을 두루 살피며 의견이나 의도를 탐색하고 확인하는 작업이 충실하고도 완벽하게 성취될 수 있을 게다. 그러나 직접면접의 이점이 배제된 전화응답방식은 보이지도 않거니와 거짓말을 해도 판별이 불가능하다. 멋대로, 아무렇게나 지껄여도 그 진실성을 인증할 방도마저 없다. 그러니 신뢰도에 대한 신뢰도자체가 의심스러워진다.

    

게다가 더 상심케 한 것은 인기영합주의적인 ‘젊은이 우대’풍조이다. 일찍이 어느 선거철엔가 풋내기 정치지향 돈키호테가 노인들은 집에서 편히 쉬라면서 투표장에 나오는 번거로움을 걱정해 주는 듯한 발언을 했던 경거망동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 정치건달의 추악한 언행이 나이든 사람들의 기분을 잡쳐놓았던 단막극이 부질없이 또다시 튀어나온 것이다. 이른바 ‘넥타이부대’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는 선거풍선 득세론에 편승하는 행태에 속이 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으로 개탄스럽다.

그러니 삶의 테두리가 두꺼워 귀찮다고 늙은이를 기피하는 젊은이는 인생의 치차(齒車)에서 과연 자유로운 존재인가 묻고 싶다. 새벽에 동방을 밝히며 솟아오른 저 붉고 화려한 태양은 내일도 어김없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그대 젊은이의 청춘을 하루치씩 갉아 먹는다. 나이테가 날이 날마다 둘둘 말려온다. 불변의 진리이다. 루틴 코스(Routine course)인 것이다. 도망칠 길이 없다. 출구부재(No exit)가 아닌가. 청춘행진곡에 들뜬 그들에게 중장년을 비롯한 40대 이상 비 청춘세대의 집단시위라도 해야 되는가. 늙었다고 괄시한다면 실버제너레이션(Silver generation)의 앤티 에이징(Anti-aging)이 그래서 더더욱 필요하다.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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