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림막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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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림막 쇼
  • 윤기한
  • 승인 2013.08.2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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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서 ‘스파이(spy)’라는 단어는 매력적이었다. 탐정소설의 주인공이라서 무척 환호했다. 염탐꾼이라는 영어인데 영어인 줄도 모르고 마냥 좋아하는 낱말이었다. 소설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스파이의 재간에 홀려버렸다. 알고 보니 간첩이라고 하는 말이기도 하건만 무작정 ‘탐정’으로 수용했다. ‘007 본드’보다 더 멋진 스파이에 미쳐버리기도 했다. 아, 그리운 스파이들이여.

○ 쿠팡이나 홈즈의 탐정에게 어린 마음은 그냥 빨려 들어갔다. 추리소설의 핵심을 끌고 가는 그들의 스릴에 어린 마음은 푹 빠졌다. 저녁밥을 먹으라는 어머니의 재촉도 소용없었다. 아버지의 굴밤 손찌검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소설의 매력인 “다음은 ..... ”하는 기대감과 성취감이 식욕을 잊게 했다. 스파이가 찾아내는 결과의 신비감은 황홀할 뿐이었다. 추리력의 에피파니 맛에 흠뻑 젖어들었다. 아, 멋쟁이 스파이들이여.

○ 철이 들어 알고 보니 스파이의 정체는 매혹 만점의 탐정구실만 하는 게 아니다. 때로는 이중간첩이 되어 국가존망의 공포존재가 되기도 한다. 철딱서니 없이 어리둥절한 채 즐기던 추리소설의 묘미를 그래서 슬그머니 지워버리고 말았다. 요염한 미녀의 간계에 빠져 나라를 송두리 채 적국에 넘기는 스파이 소설이야 물론 허무맹랑한 이야깃거리에 지나지 않지만 동심의 나래는 그 속에 드나드는 쾌감을 잊지 못했다. 아, 재주꾼 스파이들이여.

○ 그런 ‘스파이 환상’이 현실에서는 과연 어떤 것인가. 첩보활동의 주체라는 것만이 확실하다. 그게 유치한 소년의 독서목록에 낀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라도 괜찮다. 국가보안을 책임진 정보작전의 실체라면 진정 호기심의 대상에 머물 수만은 없다. 봉급수령자로서의 단순직장인 범주에 불과한 직책 담당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ID는 애국애족에 기초해야 한다. 명탐정은 명추리가로서 행동한다. 아, 똘똘이 스파이들이여.

○ 우리의 국정원은 적과 싸우는 국가정보기관이다. 탐정소설의 탐정집단이다. 추리소설의 추리가들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다. 명탐정은 자신을 들어내지 않는다. 명스파이의 외양은 결코 들어나지 않는다. 그래야 범인을 추리하고 추적하고 추단한다. 국정원요원들이 이른바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출두했다. 그들의 면모를 만천하에 공개하지 않기 위해서 가림막을 쳤다. 불가피한 조치이다. 아, 명예로운 스파이들이여.

    

○ 스파이주연의 추리소설도 아닌데 검찰이 국정원을 압수수색까지 감행했다. 정말 추리소설감이다.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 자기 나라의 스파이를 공개하는가. 그마저 뭘 잘 못 했다고 수사대상을 삼는가. 국정이라는 게 뭔데 하필이면 정보기관 멱살을 잡고 홀랑 옷을 벗겨가며 난도질을 하는가. 우리 국회는 국가안위를 제쳐두고 정쟁의 소두구만 두들겨 보는 건가. 정말 아버지 건빵인가. 아, 용감할지어다 스파이들이여.

○ 하필이면 좌빨 검찰이라는 소리가 왜 들리나. 몇 개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내용도 그렇지 않은 댓글을 가지고 대선불법개입이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망동에 여념없는 잡쓰레기 얼간이들 말에 나라가 흔들거린다는 건가. 어느 정당의 대표라는 사람은 걸핏하면 ‘무너진 민주주의’를 외쳐댄다. 차라리 유행가 ‘무영탑’이나 읊으면 귀라도 즐거울텐데. 콘크리트 세상이라 매미도 앉을 자리가 없어 울지 못한다. 아, 안보수호자 스파이들이여.

○ 견강부회라는 한문구절이 있다. 牽强附會라고 쓴다. 연목구어라는 말도 있다. 緣木求魚라고 적는다. 둘 다 터무니없는 것을 뜻한다. 역부러 한자를 들먹인 건 유명한 미국시인 에즈라 파운드가 중국어와 일본어를 배워 자신의 시집에서 한자를 내세운 걸 본뜬 건 아니다. 여러 모로 무식한 이 나라 정치패거리, 갖가지 병신 짓 서슴지 않는 대표꾼들, 그리고 정치평론한답시고 종편에 나와 입놀리는 야담꾼들을 타이르려 한 게다. 아, 알짜배기 스파이들이여. 기운 내라. 파이팅이란다. 아니, 고우(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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