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난리 통에(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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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난리 통에(10)
  • 윤기한
  • 승인 2013.08.2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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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기 한(시인, 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

 그렇다. 막다른 끝이 ‘막장’이다. 막힌다는 말(deadlock)이다. 탄광갱도의 막힌 끝자락(blind end in a mine gallery)을 일컫는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구멍을 뚫어야 한다. 막장꾼이 하는 일이다. 아버지는 막장꾼이 된 셈이다. 하지만 연장도 기력도 없다. 협력자는 더더욱 있을 리가 없다. 헤치고 나가야할 판인데 속수무책이다. 있어야 하는 건 다만 구원의 목소리일 뿐이다. 단장의 부인에게 당부한 전갈을 받고 달려와 줄 아들의 출현이 유일한 희망이요 기대인 것이다.

 
고독과 적막의 시간만이 제멋대로 흐른다. 질퍽한 땅바닥은 앉을 수도 없다. 생기라곤 땡전 한 푼 없듯 토굴 안은 바람 끼도 잠잠하다. 하염없이 제자리에서 맴돌기를 시작했다. 가만히 서 있자니 그것도 무척 힘든 일이다. 두 다리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 때문이다. 그러지 않고 달리 뾰족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가슴이 답답해 오기까지 한다. 해소기침도 마음 놓고 하지 못해 자꾸만 목구멍이 근질거린다. 기침소리를 어쩌다 밖에서 들을 세라 참으려니 참으로 딱한 지경이 되었다.
 
마침내 목소리가 들렸다. 아들이 온 것이다. 반갑기 이를 데 없다. 이제 살았구나 싶었다. 아버지는 그러나 대꾸조차 못 했다. 벅찬 감격이 목을 메웠다. 비몽사몽의 분간도 서지 않았다. 오로지 사람 소리가 곧 구원이라는 안도감만이 머릿속을 꽉 채운다. 엄습했던 냉기도 싹 가신다. 둥둥대던 가슴도 가라앉는다. 끓었던 가래마저 삭으러든다. 무거웠던 눈꺼풀이야 금방 가벼워진다. 털썩 주저앉는 게 아니고 펄쩍 뛰고자 하는 충동이 인다. 목청껏 소리쳐 부르려던 아들의 이름을 참았다.
 
아버지는 서둘지 않았다. 잘 풀려가는 참에 호사다마가 걱정되어서 그랬다. 다 된 밥에 코 빠트릴까 염려한 게다. 한 밤을 꼬박 견뎌낸 천신만고가 수포로 돌아가면 어쩔 것인가. 어디에다 원망하랴. 내가 스스로 챙기는 게 제일이다 하는 아버지의 믿음이 깊었다. 그래서 부자간의 상봉이 그 행복을 미쳐 자랑하지 못 한 것이다. 오히려 아버지의 말문이 막히고 아들은 아버지를 만난 기쁨에 말을 하지 못 했다. 무사하지만 아직도 몸을 떨고 있는 아버지 모습에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어스름 새벽빛이 두 사람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 끼를 얹어준다.
 
내의를 갈아입은 아버지는 토굴 앞으로 나아가 바깥을 살핀다. 새벽잠이 없는 사람이나 일찌감치 일터로 나가는 사람이 지나갈지도 몰라 그런 게다. 앞에 있는 작은 도랑에서 발의 흙을 씻고나 세수를 한 아버지는 의관을 제대로 차려입었다. 아들이 두루두루 찾아서 가져온 것들이다. 검정 가죽구두, 회색 중절모, 감색 정장이다. 젊어서 대전의 두 대뿐인 다꾸시(택시) 하나를 전용으로 탔던 한량의 옷매무새 그대로 단정했다. 이런 난리 통에는 되레 의젓한 옷차림이 필요하다. 옷이 날개라고 했잖은가. 의심을 덜 받기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
 
밤새도록 시달린 아버지의 육신은 피로와 수면의 공격에 만신창이가 된 듯싶다. 매우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살아남아 있다는 존재감이, 일종의 승리감이 아버지의 몸을 지탱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어쩌면 간밤의 긴장감이 덜 풀리지 않았나 하는 걱정이 생긴다. 기진맥진했던 밤중의 행진 탓에 허기진 것 같기도 하다. 어찌해서라도 아버지의 시장 끼를 해결해야한다. 다행히도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선 과수원 옆 저수지 근처에 새벽낚시꾼들이 요기하는 간이식당이 있었다. 외양을 버젓이 갖춘 아버지는 아무 탈 없이 그 집에서 아침 해장을 했다. 기운을 차린 아버지는 곧장 당신의 처외가 쪽 시골로 떠났다.
 
고되고 힘들었던 한 밤의 지옥살이가 이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어제 밤 집 옆에서 전깃줄에 묶여 사지로 끌려가다가 간신히 도망해온 지옥의 터널 같은 과정이 끝났다. 피비린내 나는 '그 난리 통에'도 살아 난 것이다. 이건 정말 눈물겨운 드라마인가. 희랍의 오디세이가 19년 동안 겪은 지중해방황을 조이스가 블룸의 하루 동안에 걸친 런던배회로 비유했듯이 아버지의 ‘하룻밤 유랑’은 6.25난리 통의『율리시즈』가 아닌가. 생사의 기로는 인간의 선택사항이 아닌가 보다. 운명은 여신의 의향에 따르는 것인가. 그렇다면 빨갱이, 좌빨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 개 패듯 할 몽둥이 말이다.
 
6.25라는 난리 통에 저지른 빨갱이들의 만행은 곧 악행의 표본이었다. 잔인무도한 놈들의 악질성향을 그대로 들어낸 살인행위는 단테의『신곡』에 등장하는「지옥편」과 진배없었다. 대전교도소 안의 우물에 많은 생사람을 통째로 던져 넣고 총질해서 죽였다. 그런 놈들을 찬양하고 추종하고 추앙하는 종북세력은 그야말로 새로운 6.25 ‘난리 통’에 박살이 나야 마땅하다는 신념에는 변화가 없다. 그 난리 통에 공산당 놈들에 대한 증오는 소멸시효를 갖지 않는다. 아버지의 영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도 그렇다.
 
                             윤 기 한(시인, 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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