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꿈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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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꿈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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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8.3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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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기 한(시인, 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
꼭 반세기 전 엊그제이다. 1963년 8월 28일 오후 3시였다. “내게는 어느 날엔가 내 어린 네 아이가 피부의 빛깔이 아니라 인격의 크기로 판단될 나라에서 살리라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외쳤다. 워싱턴의 링컨 기념관 계단에서 행한 연설의 한 구절이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25만 여명이 모인 ‘워싱턴 평화대행진’이었던 것이다.

 
그 행사가 재현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킹 목사가 연설한 그 자리, 그 시각에 연설을 했다. 똑같은 흑인이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서 그는 반세기 전 이날부터 시작된 미국의 변화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만들어 가야할 변화를 내다보자고 했다. 평화행진이 미국의 민권법의 통과와 투표권법의 서명을 성취시킨 공헌을 찬양했다. 평등사회를 열어 백악관의 변화까지 이룩한 업적을 강조했다. 그 자신의 백악관 입성이 바로 그 성공의 실상이 아닌가.
 
킹 목사는 “백 년 전 ... 한 위대한 미국인이 ‘노예해방선언’에 서명했습니다.... 그 서명은 노예로서 살아온 기나긴 밤을 마감하는 기쁨의 여명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백년이 지난 지금 흑인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비극적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미 백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흑인은 미국사회의 귀퉁이에서 여전히 궁색한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땅에서도 유배당한 신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 소름끼치는 상황을 여실하게 들어내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라고 역설했다.
 
그는 인종의 편견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면서 “절망의 골짜기에서 허위적 거리지 맙시다. 이 순간의 고난과 좌절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여 나는 오늘 여러분께 내게는 여전히 꿈이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그 꿈이야말로 미국의 꿈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의 희망을 피력했다. 그 희망은 바로 ‘자유의 갈망’이다. 그러기에 그는 “그대 나의 조국이여 / 향기로운 자유의 땅 / 나는 그대를 노래하노니 / 내 조상이 잠든 땅 / 순례자의 값진 땅 / 모든 산허리에서 자유의 종이여 울려라”라고 소리 높여 노래했다.
 
그렇게 자유가 울려 퍼지면 흑인이나 백인이나, 유태인이나 이교도나, 개신교 신자나 가톨릭 신자나 모두가 손에 손을 맞잡고 옛 흑인 영가를 함께 부를 그 날을 훨씬 더 앞당길 수 있다면서 킹 목사는 “마침내 자유를! 마침내 자유를! 감사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여 우리는 마침내 자유를 얻었습니다”라고 희망의 연설을 끝냈다. 참으로 아름다운 연설이었다. 멋지고 신나는 꿈을 선사했다. 그 꿈은 미국의 번영을 선사하는 것이었다.
 
이런 미국의 국민적 융합이 그러나 쉽게 거저 굴러온 감자는 아니다. 난마처럼 얽힌 인종의 샐러드요 용광로인 미국은 역시 다양성과 복합성의 변증법적 해법이 필요했다. 내가 겪은 인종 차별적 현상만 해도 미국에 대한 이방인의 증오심 유발이 가능한 사례이다. 근 사십 년 전 유학 당시 대학정문 앞에 있는 수퍼 마킷에서 겪은 수모는 분명한 차별대우(racial discrimination)였다. 은근히 죄여대는 학대였다.
 
필요한 물건을 사들고 마킷 안을 두루 구경하고 다니는 게 재미있는 쇼핑 투어였다. 이른바 윈도우 쇼핑을 한 것이다. 헌데 그럴 때면 백인 점원이 다가온다. “도와 드릴까요?” 나는 한 마디로 “노 댕큐, 저슷 테이커 룩!”하고 냅다 소리친다. 그러면 얼른 뒷걸음치며 연거푸 ‘오케이’소리로 아양을 떤다. 장사마당에 물건을 보고 다니는데 웬 참견이냐고 쏘아댄 것이다. 백인은 허울대가 큰 만큼이나 겁이 많은 모양이다. 이쪽에서 쎄게 나가면 확 물러서기 일쑤니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기숙사에서도 룸메이트 백인 대학원생을 제 학과 실험실로 쫓아내기도 했다. 하루 평균 3시간 반 정도 밖에 잠 잘 시간이 없이 책을 읽어야 하는 처지에서 옆자리에 사람이 있다는 게 몹시 신경을 건드렸다. 그래서 체인 스모킹으로 피워대는 담배연기는 크리스천 백인의 잠자리를 옮겨 가게 만들었다. 역 인종차별이었던가. 지금도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그때의 긴박하고 야박한 환경에서 부득이한 독선과 아집이 거셀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고급식당에 갔을 때 문간께서 손님을 맞는 매니저가 미워서도 혼났다. 수첩과 펜을 든 백인 여자가 묻는다. “스모킹, 노 스모킹?” 빌어먹을 담배피우는 건 왜 묻나 싶어 약이 올랐다. 문화의 차이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 한 탓이다. 튀어 나온 대답은 “스모킹!” 그랬더니 화장실 옆 테이블을 지정한다.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한참을 기다려 식사를 했다. 속이 상했다. 이것도 인종차별 아닌가. 킹 목사의 절규가 새로웠다.
 
차별 당했다는 편견이 강렬하게 가슴을 찔러댔다. 밥맛도 차별 받은 참이다. 그러니 으레 한다는 15%의 팁은 아예 집어치웠다. 두 번은 오지 않아야겠다는 속다짐을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잖은가. 얼마 전에 미국에서 귀국한 딸에게서 듣자니 또 다른 이질감이 생긴다. 고급식당에서 메뉴 주문을 받을 때 동양인은 메모지에 두 눈이 치켜 올라간 모습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배식 당사자를 기억하기 위한 드로잉인가. 우리의 경우 보신탕집에서 주문을 받으며 “모두 개인가요?”라고 해서 웃긴다지만 미국의 식사주문 상황에서도 좀 황당한 게 있다.
 
대학의 기숙사에서도 차별감은 다르지 않았다. 넓은 식당 홀에서 백인은 백인끼리, 흑인은 흑인끼리 식탁에 모여 앉는 게 상례이다. 흑인 학생이 구태여 백인학생이 있는 테이블에 앉으려 하지도 않는다. 어색하고 계면적다는 것이다. 아예 편하게 식사하는 편이 훨씬 좋다는 흑인학생의 얘기를 듣고 쓴웃음을 지은 적도 있다. 그만큼 차별상황은 보이지 않게 여전히 지나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국 사회는 흔들리지 않는 힘을 지니고 있다. 질서의식과 애국심이 근간이다.
 
우리에게도 지금 ‘다문화 가족’이라는 좋은 이름이 생겨났다. 여러 인종이 찾아든 우리 사회에 행여 인종차별의 냉기가 휘몰아오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불원간 킹 목사의 평화대행진 연설이 나와야 한다면 그건 큰 불행이다. 하필이면 단군 할아버지를 정점으로 단일민족이네 백의민족이네 하고 혈통우선주의를 고수해 온 게 사실이다. ‘우리민족끼리’를 들고 나오는 이북의 억지도 있잖은가. 그런 종북편향의 고집은 버려야 한다. 통진당과 이석기의 내란음모가 바로 그런 발상에서 온 게 아닌가. 이건 우리의 희망이 아니다. 꿈은 더더욱 아니다.
 
                                            윤 기 한(시인, 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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