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의 친일과 용비어천가 (장준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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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의 친일과 용비어천가 (장준문 칼럼)
  • 김용복/ 세종TV 주필
  • 승인 2019.09.06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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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준문/ 조각가, 수필가

지난 봄 우리는 티브이에서 불편한 얼굴을 마주해야 했다. 한때 우리 현대사를 마구 구겨버린 전두환이라는 사람이다. 그를 보면 떠오르는 우울한 기억들이 있다. 젊은 시절 어느 날 고향에 갔을 때 옆집 마루에 던져져 있던 ㅇㅇ일보 1면 장면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위 반 쪽엔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장엄한 일출광경. 아래쪽엔 미당 서정주의 전두환 찬시가 실려 있었다. 대략적 기억으로 ‘구국의 등불’, ‘새 역사의 창조자’, ‘온 겨레의 아버지’ 운운하는 그야말로 낯 뜨거운 20세기 판 용비어천가였다. 1981년 즈음의 연두 시로 기억되는데 인터넷을 검색했으나 기억의 오류인지 어디에도 없었다. 지면을 보관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4일전인 1987년 1월 18일자에 뜬 그의 또 다른 용비어천가를 발견했다.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중략)…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전두환 대통령각하 제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서정주).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그로 미루어 ‘일출광경’ 찬시도 짐작은 할 만하다. 전두환의 대통령당선 경축시를 쓴 조병화를 비롯해 당시 적지 않은 문인들이 신군부의 나팔수노릇을 했는데 그중에서도 서정주는 단연 군계일학이었다.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伍長)/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사람/ 인씨(印氏)의 둘째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중략)…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항공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

폭탄이 장착된 전투기째로 항공모함에 내리꽂는 가미가제(神風) 특공대원으로 나가는 우리 조선청년을 찬양하는 ‘마쓰이 오장 송가’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그는 일제(日帝) 말기인 1943년 다츠시로 시즈오(達城靜雄)라는 이름으로 황국신민으로서 아들들을 기꺼이 황군으로 보내라는 독려의 글인 ‘징병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 라는 글을 비롯해 일제를 찬양하는 11편의 작품들을 발표했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1980년대에는 “…이 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 86아세안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라 운운한다.

광복 후 그는 우익문단 주도활동으로 2000년 정부로부터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1년에는 중앙일보사에서 미당문학상을 제정했는데 그나마 시민단체의 항의로 2018년 폐지됐다. 그의 사후 일부의 평가도 가관이다. 문단 안팎에선 문학적 역량만으로 그를 평가해야 한다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 ‘미당 서정주 전집 완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 모 교수는 "정치는 짧고 예술은 길다. 역사와 정치에 대한 오해로 훌륭한 문학작품이 폄하되는 것은 일시적이다.” "잠실운동장에 잡초 몇 포기 있다고 운동장을 갈아엎어야 하겠는가?” 라며 그를 옹호했다고 한다. 이에 오길영 평론가는 “미당 시가 큰 잔디밭인지도 의문이고, 그의 정치적 오류가 잡초 몇 포기에 불과한지도 의문이다.” 라고 질타했다고 한다. 최근 서정주의 첫 시집 ‘화사집’이 1억 원에 판매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는데 처절한 가난에도 진실을 위한 글을 쓰기위해 밤새우는 많은 문인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길 바란다.

머지않아 국화의 계절이다. 필자는 육사나 만해 등의 항일 시들을 좋아한다. 서정주의 기회주의 성향을 알기 전부터 그의 ‘국화 옆에서’는 좋아하지 않았다. 이 문제로 각쟁이인 필자가 국문학전공의 은사님과 주제넘은 논쟁을 한 적도 있다. 영조 때의 문신 이정보는 국화를 ‘절개’의 상징어인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 노래했는데 그 ‘국화’가 서정주 시의 소재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불쾌하다.

서정주의 언어적 재능엔 그 재능을 압도하는 비열함이 악취처럼 배어있다. 만년의 어느 날 서정주에게 기자가 친일과 신군부관련행적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사람이란 시류에 따라 살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라는 투로 대답하는 걸 티브이에서 목격했다. 세치 혀와 손끝에서 발현되는 알량한 재주보다는 심중에서 우러나는 진실만이 참 가치라는 걸 그는 죽음직전에라도 깨달았어야 했다.

금년 초 잊고 있던 어음사기의 달인 장영자가 다시 사기로 구속됐다는 뉴스를 접했는데 심지어 자신이 선임한 변호사에게까지 사기를 시도했다고 한다. 또 81세의 대도(?) 조세형이 단돈 몇 만원을 훔쳐 열여섯 번 째 구속됐다는 소식도 들렸다. 뉴스를 접하며 떠오른 생각은 ‘선천성’이라는 것이다. 장영자의 사기벽과 조세형의 도벽, 그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 서정주의 ‘기회주의 습벽’이라 할 수 있다.

논어 이인(里仁) 편에 “君子喩於義 (군자유어의) 小人喩於利(소인유어리)”라는 구절이 있다.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이(利)에 밝다는 뜻이다.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처럼 거시적 이상을 추구하는 ‘군자 형’ 인간과, 입신양명이나 일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소인배 형’ 인간을 이름인데 서정주야말로 후자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예외로 상식적으로는 이해 불가한 ‘전두환 형’ 인간도 있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 했듯 새해 초 부인 이순자는 남편을 ‘민주주의의 아버지’라 해서 소를 웃기고, 피 흘려 민주주의를 지켜 온 이들을 공분케 했다. 그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며 어떤 네티즌은 ‘아버지’에까지 모독이라 했다. 그 전두환의 무도한 정치권력과 서정주의 사악한 문화권력의 결탁이야말로 우리의 한 시대를 퇴행케 한 가증스러운 반역사적 반민족적 조합이었다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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