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창(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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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창(34)
  • 윤기한
  • 승인 2013.09.2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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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 희(시인, 뉴욕취재본부장)
한국에서는 추석이 긴 연휴의 절정을 이루는 것 같다. 미국에서 휴가계절의 절정은 더운 여름방학과 휴가철인 7-8월을 지나 9월 첫 월요일의 노동절(Labor Day)연휴인 것 같다. 사람들이 9월에 들어서면 해가 저물어간다는 느낌을 갖기 시작해서 쓸쓸한 마음을 갖게 된다. 이제 얼마 있으면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 오고 크리스마스를 지내면 올해도 다 가는 구나 싶어 섭섭해진다.

 
뉴욕의 올해 여름은 그리 덥지 않았다. 선선하고 화창한 어느 날 필자는 젊은 친구와 그녀의 후견인격인 미국가정에 초대되어 노동절연휴를 지내러 커네티컷 주의 한 교외에 갔다. 뉴욕의 그랜드 센트럴역에서 기차를 타고 뉴 헤이븐(New Haven)까지 갔다.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마을의 단거리 왕복열차(shuttle train)로 갈아타고 올드세이브루크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동네에 갔다. 산 앞에 강물을 끼고 그 강이 대서양으로 흘러 합치는 해변 건너편 언덕에 집들이 서있었다. 방문한 집 발코니에 나가 파라솔 밑에 앉아서 강물에 떠있는 작은 배와 얏트를 보는 기분은 참으로 평화스럽고 아름다웠다.
 
그 댁의 증손녀 첫돌 파티를 계기로 50여명의 일가친척, 친구 또 동네 이웃들이 축하하느라 들fms 날이었다. 모인 사람들은 커네티컷 주의 본토배기들로 영국, 아일랜드, 그리고 독일계의 혈통을 가져 족보를 자랑하는 대가족이었다. 그들 대부분이 가까운 동네나 다른 마을에서 살고 있단다. 외국에서 거주하는 가족은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우물 안의 개구리들은 아니었다. 위대한 야망과 꿈을 갖고 세계화에 참여하는 가문은 아니었지만 단란하게 모여 사는 것이 부러웠다. 정원입구(porch)의 커다란 파라솔 밑에 뷔페 식탁이 놓여있으며 오후 5시에 케이크절단을 하고 만찬을 하게 되어 있어 오후 1시에 도착한 우리는 집안 2층 발코니 사실(balcony den)에서 강을 바라보며 가벼운 점심을 먹었다.
 
한참 중동에서는 시리아 아사드 독재정권이 반란군에 대항해 화학무기를 사용함으로써 무고한 시민과 아녀자들이 많이 학살되고 미국과 서방세계는 그 응징방법에 골몰하고 있는데 여기 휴일무드는 평화스럽기만 하다. 갑자기 35여 년 전 어느 휴일주말이 생각났다. 필자는 남편과 미국에서 살던 젊은 시절에 알고 지내던 동료 미국과학자 내외의 초대로 메리랜드 항구 체사피크 만에 있는 얏트 안에서 하룻밤을 정박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당시 우리를 초대한 프레이터(Prater)박사는 젊었을 때 미국해군에 종사한 시절을 가졌던 늦깎이 과학자였다. 그의 취미는 배로 항해하는 것이다. 생물학을 전공한 그의 부인 말에 의하면 결혼 후 얏트타기 훈련을 하느라 힘들었지만 결국 같이 즐기게 됐다고 했다. 부부동반으로 활동하는 것이 결혼생활에서는 필요하며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그 부부는 집 한 채 값이 되는 얏트를 장만했고 내부에 작지만 살림살이를 모두 갖춘 부엌시설이 있으니 얼마나 앙증맞고 편리한가!
 
우리 일행 다섯 사람(Prater 박사 내외, 선장역할을 맡은 해군시절 친구 분, 그리고 우리 내외)이 1박 2일 선상에서 먹을 식량을 냉장고에 준비해 놓고 선반에 만반의 가제도구들이 잘 진열되어있는지 점검도 해야만 했다. 특히 음료수와 물의 양이 충분한가를 확인해 두어야했다. 그러니 주부의 역할이 얼마나 어렵고 책임이 큰가! 그 뿐인가. 모두가 선원이 되어 필요하면 교대로 임무수행을 해야 한다. 한 사람은 항해 중 항해일지(log book)의 계기판에 나타나는 바람의 속도와 방향을 시시 때때로 적어야 하며 배의 위치와 바다물의 깊이도 알아야만 했다.
 
우리는 초대해주신 부인이 식사를 준비할 때 비틀거리며 도와드리고 조타수(pilot)를 하시는 선장과 교대하는 박사님 옆에서 여러 가지 현상을 견학할 뿐이었다. 항만에서 아주 멀리로는 안 나갔지만 항해의 시뮤레이션을 할 만큼의 거리가 되는 바다로 항해했다. 해질 무렵에 체사파크 만에 돌아와 하룻밤을 얏트에서 잤다.
 
아침 4시에 일어나 해가 뜨는 광경을 보면서 아침밥을 먹었던 낭만적인 휴가였다. 하나 얼마나 단합된 개개인의 헌신적 팀웍이 중요하며 그 조화와 협동이 생존에 필수적인 조건인가를 깨우쳐준 값지고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던 것이다.
 
올드세이브루크마을 집의 손자와 그의 여자 친구 그리고 또 한 쌍의 젊은이들이 해상으로 항해하는 것을 지켜보며 ‘멋진 항해(bon voyage)!’를 외쳤다. 나이든 손님들은 한국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참전했던 어떤 분이 인천상륙전투 추억을 되살리는 이야기를 우리와 나누었다. 초대해주신 주인 밥(Bob)은 유럽전선에 참여했고 참석자 모두가 당시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이었는데 그들이 지금 80을 바라본다. 밥은 작년에 한국을 처음 방문했던 인상을 이야기하면서 얼마나 한국이 기적을 일으키며 국가재건사업을 훌륭하게 수행했는지를 설명하며 한번 방문을 해보라고 손님들에게 권했다.
 
나는 일요일 오후에 가끔 퀸스 식물원(Queens Botanical Garden)에 가서 운동 겸 건강관리를 위해 산책한다. 오후 4-6시 사이에는 입장료가 무료이다. 때로는 책을 갖고 가기도 하고 혹은 글쓰기 노트도 지참한다. 맨하튼에 유명한 센트럴 파크가 있지만 퀸스 바러특별구(Queens Borough)에서 거리가 멀어 전철타고 가야할 계획을 짜고 나들이를 해야 한다. 그러니 자주 못 간다. 이 동네에는 메도우 파크(Meadow Park)나 키세너 파크(Kissena Park)가 있지만 너무 넓어 단체로 소풍 겸 놀러가지 않는 한 홀로 산책하며 걷기에는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안 준다. 그래서 도보로 걸어갈 수 있는 가깝고 호젓한 느낌을 주는 작고 아담한 식물원을 찾게 되는 것이다.
 
큰 저택의 뒷마당을 연상시키는 식물원에는 장미정원, 꿀벌농장, 야채밭, 갈대 길, 다양한 큰 나무에 넓은 잔디가 깔린 곳도 있다. 입구대로 끝에 인형의 집을 연상케 하는 작은 홀이 있으며 그 앞 정원에서는 야외 결혼식과 생일파티도 가끔 열린다. 그곳에서는 째즈나 록 음악연주도 한다. 그때 나이에 관계없이 음악에 맞춰 쌍쌍이 춤을 추는 것도 보게 된다. 마당에는 미끼마우스 조각이 있다. 곳곳에 무궁화, 도라지꽃, 갖가지 야생화가 있으며 분수 옆에 큐피드동상도 있다. 하나 작은 연못에 연꽃이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이곳의 특성은 한인사회의 적극적 참여이다. 김철원 로펌의 박상훈 대표는 고 김철원 변호사의 취지와 이념을 계승해서 식물원의 이사로 추대됐다. 새 이사님은 젊은 나이에 작고한 김철원 변호사 기념수와 그의 유족이 기증한 벤치 앞에서 2주년 기일에 명복을 빌었다. 9.11 쌍둥이 무역센터 폭파 12년 기념행사가 있은 후 필자는 일요일 오후에 식물원을 찾아 차분한 기분으로 사색하면서 주변을 걸어 다녔다. 놀랍게도 네 군데에서 9.11 참사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묘목식수와 꽃다발을 발견했다. 일본 감나무, 태산목(Magnolia), 흰 자작나무 그리고 푸른 전나무 등 상록수 들이 놓여 있었다. 모두 빨간 리본이 명패위에 달려있었다. 필자는 고개 숙여 기도를 했고 세계평화를 기원하며 다시 한 번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이 승 희(시인, 뉴욕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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