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그리도 만만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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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그리도 만만한가
  • 윤기한
  • 승인 2014.01.0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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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기 한(시인, 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

걸핏하면 ‘국민’을 들먹인다. 정치인이 아무 데나, 아무 때나 끄집어다 쓰는 상투어가 돼버린 게 ‘국민’이다. 불법파업 종사자들도 덩달아 ‘국민’이라는 말을 볼모로 삼는다. 무슨 놈의 장난감인양 주물러대는 게 요즈음의 ‘국민’이라는 낱말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침 해장거리 신세가 되어 있다. 떠벌리는 입마다 국민을 제 혓바닥으로 삼으니 그렇지 않은가. 국민이 그리도 만만한 존재인가 하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변변찮은 입놀림으로 구설수에 오르지 않을 수 있겠나.

 
일찍이 왜인들이 애용한 게 ‘고꾸밍(國民)’이다. 그들은 ‘신민(臣民)’도 상용했다. 자기네 군주국의 권속(眷屬)이라는 개념으로 통치의 대상인민을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영어의 ‘subject’가 곧 그것이다. 종속과 복종을 전제로 하는 인민을 말한다. 지배자(ruler)에 대한 피지배자(subject)를 가리킨다. 일인들은 초등교육기관을 자기네 입맛에 맞추어 ‘국민 학교’라 불렀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초등학교가 바로 그 ‘국민 학교’였다. 옆구리에 긴 칼을 차고 교실에 들어온 사이비 군인이 담임교사였던 시절에 그랬다. 선생이 다름 아닌 군국주의 병사이고 제국주의 ‘쫄병’이었다. 그 공포의 대상이 뭔가를 가르친다고 한 게 ‘국민’이었다.
 
본시 한 국가의 통치권에 속한 사람의 집합이 국민이다. 그럴진대 아무렇게나 대접할 상대가 결코 아니다. 헌법이 존중하는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마구잡이 볼모로 휘잡아 흔든다. 졸장부 국회의원들이 그런 짓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기에 난도질당하는 국민의 가슴에 피멍이 든다. 자괴지심이 팽배해 있는 게 사실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새 정치를 하겠다는 어느 국회의원이 엊그제 텔레비전에 나와 어설픈 개그를 하는 장면에서도 국민이 홀대를 당했다. 요즈음 국민이 좋아하는 라면이 ‘국민이 함께 라면’이란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헛김 빠지는 소리가 아닌가.
 
이런 비극을 만든 작자들이 어떤 족속인가를 국민은 잘 알고 있다. 그게 바로 국민이 자신들의 국정의사를 대변하라고 뽑아 준 위인들이다. 입법기관이라는 국정전당의 국민대표(representative) 직함을 부여한 인물들이다. 그들이 염치없이 국민을 앞세우고 온갖 헛소리, 막말저주, 공갈협박, 억지주장, 허위선전 등 무수한 술수를 작위적으로 행사한다. 그런가하면 보잘 것 없는 단순노동자이면서도 거액의 연봉에다 해고기금까지 거치하고 자동승진의 화려한 철밥통 움켜잡고 정작 국민의 발길을 가로막는 짓을 막무가내로 해대는 철도파업자들도 국민을 위한 투쟁이라고 우겨댄다. 피가 거꾸로 돌아 ‘하지정맥류’병에 걸릴까 걱정이다.
 
지하철 광화문역 입구까지 막아버려 퇴근길 시민들의 불편을 극한점까지 끌어 올린 민노총주관 도심시위는 과연 ‘국민’을 위한 행사였는가 묻고 싶다. 와르르 무너진 ‘폴리스 라인’을 바라보면서 무질서가 난무하는 이 나라의 치안상황이 불쌍해졌다. 이 따위 엉망진창의 집회를 허가한 치안당국이 한심스러워지는 한겨울의 추위가 무섭다. 무법천지가 된 대한민국의 수도 길거리에서 추위에 덜덜 떠는 어린 자식에게 크나큰 죄를 지은 아비가 된 중년의 직장인은 절망감에 몸이 굳는다. ‘국민을 위해’ 민영화반대 투쟁을 한다는 귀족노조원들에게는 정작 ‘국민’은 실종됐다. 아니 안중에 있지도 않았다.
 
노상 ‘국민이 우선’이라고 입버릇처럼 뇌까리는 정치인들이나 시위꾼들은 어느 나라 국민인가. 중국의 4천여 년에 걸친 역사는 국민혁명의 역사라고 한다. 그 지도주체는 ‘중국국민당’이었다. 여기에서의 국민은 50여개의 소수민족을 모두 아우른다. 그런데도 종내에는 공산당에게 패배한 못난이 정당으로 전락하는 불행을 당했다. 국민을 제대로 감싸지 못한 탓이다. 그처럼 국민은 선택권을 가진 거대한 세력이다. 아무렇게나 집적거리면 크게 손해를 당할 수 있다는 교훈을 보여 준다. 그런데도 만만하게 보는 정치집단의 구성원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을 가지고 여전히 ‘국민’을 내세우는 꼬락서니가 볼썽 사나웠다. 민주당 국회 수석대변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의 회견을 국민이 원하는 얘기가 아니라 대통령의 일방적인 메시지만 담겨 있다고 비난했다. 그가 말하는 ‘국민이 원하는 얘기’는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이나 사회적 대타협위원회 구성만을 강조하는 정치타령으로 들린다. 회견을 얼핏 ‘대통령의 모노드라마’로 낙인하고 싶은 듯한 비판으로 들렸다.
 
군소 정치꾼모임들도 역시 ‘국민’을 끄집어내 허적댔다. 그들의 맹맹이 콧구멍 같은 시각에서야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회견이라고 부정문장 만드는 게 꽤 재미있는 말놀이일 테니 그랬을 게다. 새정치추진위원회라는 데서는 공약 후퇴를 국민에게 설명하지 않은 것을 꼬집었다. 정당해산 수순에 들어 있는 통합진보당은 박 대통령이 국민에 의해 등을 떼밀려 억지로 기자회견을 했고 국민의 기대를 저버려 절망에 빠졌다고 투덜댔다. 여전히 국민을 버팀목으로 삼아 정치편견을 토로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거품을 물다 싶이 하고 떠벌리는 게 다름 아닌 ‘소통’이다. 소통이야 누구에게나 좋고도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기에 소통을 문제 삼아 세상이 시끄러운 게 아닌가. 이렇건 저렇건 소통과 불통은 양방향 교통과 같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소통이라면 미흡한 블록킹이 불통을 만든다. 한데 소통의 주인은 아무래도 국민이다. 국민은 정치식탁에 맛을 내기 위해 진설된 반찬이 아니다. 국민은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진짜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정치쟁점을 부각시키는 ‘대용물’로 삼는 짓은 삼가야 한다.
 
                                윤 기 한(시인, 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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