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분한 정의투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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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분한 정의투사들
  • 윤기한
  • 승인 2014.07.3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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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기 한(시인, 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

선거가 끝났다. 시원하다. 통쾌하다.

많은 사람이 지겨워하던 ‘7․30 재․보궐선거’가 마무리됐다. 어지간히 시끄러웠던 탓에 모두가 후련해 한다. 뉴스매체라는 것들이 진저리가 날 만큼이나 떠들어댄 바람에 국민의 식상이 머리끝까지 올랐던 참이라 이제 속이 풀린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야당꾼들은 정권심판이라는 거창한 팻말을 내걸고 죽자 살자 찡그린 낯에 목줄의 핏대를 솟구어댔다. 세월호 참사를 천하의 호소재로 삼아 정부처사의 무능을 과대포장해서 공격의 강도를 높여 갔다. 마치 야바위 습성의 절경을 보라는 듯 했다. 허적대던 여당의 수세과정은 아둔한 어리광 짓에 머물렀다. 그러니 시끄럽다 못해 지저분하기 그지없는 ‘한 표 구걸경쟁’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런 처량하고도 괘씸한 싸움판이 잠을 설치게 만드는 마력은 지녔나 보다. 평소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는 건강훈화를 잘 지켜오다가 어제 밤에는 파계승이 되었다. 텔레비전 화면에 쏠린 눈알이 피로감을 견디느라 고생을 했다. 멍청한 방송패널이라는 인물들이 주서 섬기는 말장난이 귀엽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시선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선거의 결판이 난 자정에야 허리를 폈을 정도로 천치노릇을 했던 것이다. 그거야 제 멋대로 지껄여 댄 넋두리에 조금은 신경이 걸려들었던 게다. 흔한 궁금증이 그리 시켰던 탓이다. 그래도 ‘여당 대승 야당 몰락’이라는 앵커의 결론은 감겨오는 눈을 다시 곱뜨게 했다. 이른바 ‘11대4’라는 스코어는 야구경기장의 대형전광판에 나오는 숫자가 분명 아니었다.
 
크게 흥미를 돋우는 멋은 없지만 신문이나 방송의 추리 일변도 기사는 엉뚱하고도 재미가 있다. 선거기간 막바지에 ‘15곳 중 8곳 초박빙’을 표제로 내건 조간 중앙지의 추측기사가 있는가 하면 ‘야합정치 심판이냐 무능정부 심판이냐’의 모토를 내세운 역시 다른 조간 중앙지의 인용구가 돋보였다. 박빙승부의 치열한 경쟁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던 ‘서울 동작을’의 투표결과가 929표의 차이를 보이며 스릴만점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서울시 부시장을 지내 장차 대권에 도전할 시장의 밑그림으로 내민 기동민 후보를 냅다 갈아치우고 그 흔해빠진 슬러건 ‘야권단일화’의 급조 로벗으로 등장한 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어이없이 나가떨어졌다. 오늘 아침 어느 신문의 두툼한 얼굴을 가진 여기자가 종편방송에서 너무나도 근소한 차이라서 나경원의 승리가 아니라고 투덜대는 장면이 야성적 공격의 압권으로 나타나기도 해 실소를 금치 못 했다.
 
그렇거나 저렇거나 아침신문의 기름 냄새와 더불어 독자를 즐겁게 하는 기사제목은 기발하고도 신기한 재주를 부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꽤 앙증맞은 것들을 눈에 뜨이는 대로 잡아 봐도 달콤한 뒷맛을 남긴다. 그 중에 ‘輿(김용남)패기에 고전하는 野(손학규)거물’의 대결이 투표함을 열기까지 승패를 알 수 없다고 얼러댔다. 40대의 검사출신과 60대의 장당대표출신이 맞붙은 볼거리를 지근덕거린 헤드라인이 사뭇 신났다. 그보다 더 신기한 놀음도 가관이라는 글귀를 생각케 한다. 전라도의 ‘선상님 터전’에 ‘거센 뒷심과 믿는 야심’이라는 순천곡성의 결전표현은 영화 ‘하이 눈’의 박진감을 되새겨 주었다. 거기에 ‘수도권 판세와 야권단일화’라는 협박성 관전평은 이번 선거의 백미를 장식하며 노인복지관을 찾은 나경원과 포장마차를 찾은 노회찬의 그림을 나란히 실어 놓았다. 그건 어쩌면 건방지고 음흉한 독자의 관음증 같은 것을 넌지시 자극하지 않았나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실제 ‘야합’을 해놓고도 말은 ‘단합’이라고 우겨대는 족속이 선거를 망쳐버렸다는 중론이 일고 있다. 단일화하는 게 정의구현의 신성한 작업이라고 입놀림하는 자들이 이번 선거를 망쳤다는 야권인사들의 볼멘소리가 엄청나게 확대되고 있다. 정의라는 단어를 마치 북쪽의 김정은이가 장사폰가 뭔가를 무턱대고 쏘아붙이며 허세를 부리듯 해서 그런 패배의 오욕을 자초한 것이다. 본시 ‘정의(justice, Gerechtigkeit)는 도덕적 의미와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아무렇게나 찍어다 붙이는 말이 아니다. 시민중심의 학자들은 정의가 개인의 도덕적 또는 정치적 절대 자유평등이라고 규정한다. 자연인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자유이고 평등하다. 그러나 일단 사회적 제약 속에 들어가면 이것이 전통이나 관습이나 신분 같은 것에 의해 파괴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본디 원시적 성질을 되찾는 것을 정의라고 하는 사상이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정의라는 용어에는 이미 민중적 편견이 고정적으로 깃들어 있으며 그 관념은 다른 이데올로기와 마찬가지로 역사적 산물인 것이다.
 
이럴진대 ‘정의’를 아무나 아무렇게나 둘러대 쓰는 건 엄청난 망발이며 오만이다. 더구나 그 쬐그마한 정치그룹의 명칭으로 대형포장화하고 불손하게도 그걸 빌미로 선거 때만 되면 얼씨구나 좋다 하고 덤벼들기 일쑤이다. 그러다가 판세가 제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무슨 합종연횡이나 한답시고 떡고물 뭉개 비비듯 한다. 그런 버르장머리가 이참에 완전히 박살나고 말았다. 터무니없는 짓거리인 ‘전략공천’이라는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재판에 게류중인 여인을 ‘정의의 딸’이라고 들먹여 ‘자연뽕’ 자리에 갖다 부려놓아 그 선거구의 투표율은 물론 다른 결전장에서 무참하게 내동댕이쳐지는 비극을 맞았다. 참으로 불쌍하고 안 됐다. 그런 ‘지상 최대의 수모’ 기록을 작성한 자들이 아무리 염치없고 낯이 두꺼워도, 입이 열 개라도 “샷더마우스!”가 아닌가. 그들이 애지중지 아끼고 사랑하는 ‘정의’는 근대적 평등관념을 신봉하는 부르조아 경제사회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경제적 조건에서 진화발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맑시슴이 기막히게 해명해준다. 프로레타리아의 정의는 계급자체의 타파와 지양(止揚)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저네들 모두가 ‘지저분한 정의투사들’이었구나 그래.
 

                                윤 기 한(시인, 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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