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비우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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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의 추억
  • 민효선/ 수필가
  • 승인 2017.08.23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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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효선/ 수필가

부재중 전화번호가 찍혀있다. 핸드폰 번호가 아닌 일반 전화번호다.

누굴까? 궁금했지만 저장되지 않은 모르는 번호라 누르진 않았다.

수업이 끝나갈 즈음 또다시 울리는 같은 번호. 수업이 끝나고 바로 버튼을 눌렀다.

“민효선입니다. 누구신지요?”

“효선씨죠?”

조금은 높은 톤의 목소리지만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음색이다.

“나, 000입니다.”

순간 힘없이 잡고 있던 볼펜에 힘이 들어간다.

“아~~ 안녕하세요?” 그 이름 석 자에 내 목소리는 긴장되어 반올림한 듯 커지기 시작한다.

그래. 그 목소리다. 수십 년 전에 들었던 그 목소리. 세월이 변했어도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얼마 전에 지인으로부터 그분의 소식을 들었다. 반가웠다. 가슴이 콩콩 뛰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단발머리 사춘기의 모습이 퍼뜩 뇌리를 스친다. 36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이다. 사춘기 소녀의 꿈을 아름답게 가꿔 주시던 분.

민효선이라는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시단다. 지인으로부터 전화번호를 받아 입력해둔 그 이름.

그런데 입력된 번호가 아닌 유선전화로 걸려온 그 목소리.

우리들의 통화는 조금의 호들갑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약속을 잡았다.

36년 만에 우린 알아볼 수 있을까?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의 기억 속에 들어있다.

누군가의 그 기억 속에 우린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 걸까

난 그 누군가에게 어떤 모습의 사람으로 기억될까

우린 많은 만남을 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나의 의지든 아니든 인연이란 테두리 안에 관계를 만들어가며 살아간다.

    

좋은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맺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것이리라. 그런데 요즘 인간관계는 서로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 같다. 순수한, 아무 것도 서로 바랄 것이 없는 사심이 없는 인연은 없는 듯이 보인다. 가정에서 살림만하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며 사심 없던 순수한 나의 마음도 분명 변하고 있으리라. 흐르면 흐르는 대로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선함을 점점 잃어 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열일곱 단발머리 소녀의 추억이 뫼비우스의 추억이 되어 툭톡 튀어 나온다. ‘뫼비우스의 띠'는 직사각형의 띠 모양의 종이를 한번 꼬아서 끝과 끝을 연결했을 때 생기는 곡면으로, 안과 밖이 구별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어느 지점에서나 띠의 중심을 따라 이동하면 출발한 곳과 정반대 면에 도달할 수 있고, 계속 나아가 두 바퀴를 돌면 처음 위치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게 뫼비우스의 띠인데 지금 내가 뫼비우스의 추억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1858년 독일의 수학자 ’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 뫼비우스‘가 발견했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고등학교 1학년, 6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이다.

토요일 늦은 귀가로 인해 엄마는 내게 눈을 흘기며 아침밥을 차리셨다. 할아버지 눈치 때문에 큰 소리로 꾸짖지 못하시고 계속 곁눈질로 나를 흘겨본다. 못 본 척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서려는데 막무가내로 못나가게 하신다. ‘어제 밤 누구와 무엇을 하느라 늦게 들어왔느냐’의 추궁으로 시작해 급기야 언성까지 높이시며 그 따위로 공부하려면 학교 때려치우란 말씀까지 하신다.

난 무던히도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었나보다.

고등학교 입학하여 첫 시험을 치뤘다. 성적표를 들여다보고 엄청 실망을 했다. 나에 대한 엄마의 무관심이 이날 폭발하여 모든 것들을 다 엄마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왜 그러냐고, 엄마가 언제 나한테 관심이나 있었냐고” 로 시작하며 울며불며 엄마의 가슴에 대못 박는 소리를 얼마나 했는지,

그럴 때마다 엄마도 엄청 화가 나셨을 게다. 그러니 당장 내일부터 학교 가지 말란 말까지 쏟아내셨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월요일 아침.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간다고 집을 나섰다.

아침밥을 먹는 내내 전날 엄마가 학교도 가지 말라는 그 말을 계속 곱씹고 있었다. 교복을 입고 대문을 나설 때 난 이미 학교가 아닌 그 어딘가를 찾고 있었다. 무작정 서대전역으로 가서 기차에 올랐다. 목적지도 없이 올라탄 기차는 두계역에 정차했다. 한적한 시골마을을, 세상 근심 혼자 짊어진 냥, 고독을 씹으며 시간을 보내다 집으로 왔다. 물론 학교에 다녀왔다는 인사로 나의 하루는 무사히 지나갔다.

그런데 다음날.

등교 않고 미적대는 나에게 엄마는 “왜 학교에 안 가냐?” 하신다.

“엄마가 학교 가지 말래서 어제도 안 갔어” 그 말에 또 다시 전쟁은 시작되었고, 급기야 엄마의 눈물을 보고나서 난 학교에 갔다.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콩콩 뛰었다. 담임선생님 시선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어제 왜 결석했느냐고 시선으로 묻고 게신 듯 했다.

난 솔직하게 모든 것들을 말씀드렸다. 물론 혼날 각오를 하고서 말이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한참 동안 내 두 손을 꼭 잡아주셨다. 따뜻함이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켜주었다. 그리고 몇 초간의 시간이 지났다. 잡은 손을 놓으시며 나를 바라보셨다. 그 순간 내 눈에선 눈물이, 선생님 얼굴에선 잔잔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어디로 튈지 몰랐던 그 시절. 그 추억.

그 추억 속에 그 분이 계신 것이다. 윤월로 선생님.

전화를 받는 순간 따사롭고 포근했던 그리움이 뫼비우스의 추억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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