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결수의 인권
상태바
미결수의 인권
  • 윤 기 한(시인, 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
  • 승인 2017.11.02 1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윤 기 한(시인, 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

미결수는 ‘미결 수용자(未決 收容者)’의 통칭이다. 재판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 있는 형사 피의자 또는 형사 피고인으로 미결 수용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사람이다. 구치소에 구금되어 있는 사람이다. 아직 재판의 결과가 나오지 않은 사람인 것이다. 그러기에 그에 대한 인권문제가 논의대상이 될 수 있다. 무죄추정의 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어려서 본 미결수는 법정으로 끌려 갈 때 얼굴을 가렸다. 싸리나 가늘게 쪼갠 댓개비로 둥글고 길게 짠 안면 가리개를 뒤집어썼다. 마치 민가에서 익은 술이나 장을 거르는데 사용하는 용수처럼 생긴 것이다. 그래서 포승으로 양손은 묶여 있어도 그가 누구인지 알아 볼 수 없었다. 초상권이 소중한 사실을 일깨웠던 현상이다. 일제로부터 광복한 이듬해에 내가 목격한 미결수의 모습이 그랬다. 그건 바로 내 아버지의 경우이다. 일본군 패잔병 장교가 주고 간 일본도와 단검 등 때문에 불법무기소지 혐의로 형사입건 됐을 때였다.

요즈음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하는 미결수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얼굴은 환하게 들어 내놓고 수갑이나 포승으로 꽁꽁 묶인 양손은 뭔가로 가려져 있다. 앞의 실례와는 정반대이다. 이런 미결수를 법정으로 인도하는 교도관은 미결수의 팔을 잡고 동행한다. 교도관의 외형은 완전히 노출된다. 그 두 인물의 초상권은 백주의 침략자 같은 기자들의 카메라 풀래시에 점령당하고 만다. 그런 장면에 그래서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아니 구역질이 난다.

흔히 촛불의 승리라는 대통령 탄핵사건으로 많은 미결수가 뜻밖의 각광을 받고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앞서 말한 양상의 초상권 박탈 상태에 놓여 있다. 아세아를 뒤흔든다는 걸 그룹이나 한류돌풍을 일으키는 팝 코리아도 아니건만 본의 아니게 초라하고 일그러진 민낯을 만천하에 억지로 공개하고 있다. 종편이라는 졸장부 대중매체는 얼씨구나 좋아라하고 이들의 그늘진 모습을 흥미롭게 빈도수 많은 구경거리로 방영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

    

방송을 매스 미디어의 본산으로 여기며 종횡무진 잘 난 척 법석을 떠는 종편은 제 입맛에 맞는 패널을 불러 앉히고 달갑지도 않은 시청자 봉사용 해설을 거든답시고 별스런 내용도 없는 장광설을 늘어놓게 하고는 미결수의 초상권을 유린한다. 박 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다른 미결수들 보다 더 오래, 더 많이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시킨다. 끌려가는 형상을 자못 즐기는 흥행거리로 삼고 있다. 그게 시청자를 위한 엄청난 작전계획이라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잔인하기 그지없는 초상모멸 행태가 아닌가 싶다.

아무리 국민의 알 권리를 존중하고 시청률 높이기에 매진한다 하더라도 미결수의 처량한 몰골을 철저한 일관작업형식으로 화면을 채워야 하는가. 죄가 있든 없든 전임 미결수 대통령이거늘 그렇게 무참하리만큼 휘둘러대야 하는가. 김정은을 트럼프와 똑같은 크기로 클로즈업 하는 게 진보성이라는 이름으로 가름한다면 박 전 대통령 같은 미결수들도 지금의 미결수 신병처리만으로 방송의 팩트를 강조하는 건 아닐 것이다. 미결수 이전의 평상시 영상을 보여주는 아량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더 편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런 지혜와 지성과 정성은 어디에 팽개쳤는가.

이제는 시청자들이 권태를 느낀다. 싫증이 나고 신물이 난다. 광고욕망에다 진보성향까지 합세해서 만드는 프로그램 담당 피디만이 아니고 그런 화면을 요구하는 앵커 이름의 오만한 신사가 이제는 오히려 민망스러운 존재로 보아진다는 게 시청자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이 현실에 둔감한 자들이여, 자칫 미숙하기 짝이 없는 청년이 디스토피아(逆 理想鄕)를 유토피아로 착시하는 듯 하는 무지막지한 행위를 넘보지 말지어다. 돈 안 든다고 미결수의 인권을 유린하는 티비 화면 도배질은 그만하기 바란다. 미결수 자신 보다 그의 초상을 울궈먹는 행위가 더 가증스럽지 않은가./윤 기 한(시인, 평론가, 충남대 명예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목민(牧民)의 방법을 알고 실천한 안철수 의원
  • 대통령 윤석열이여, 더 이상 이재명의 꼼수에 속지 말라
  • 자신의 눈에 있는 '대들보'를 먼저 보라
  • 천하장사, 이봉걸 투병 후원회 동참
  • 세종시(을) 강준현 후보여 떳떳하면 직접 검찰에 고발하라
  • 제22대 총선의 결과와 방향은?
    • 본사 : 세종특별자치시 한누리대로 234 (르네상스 501호)
    • Tel : 044-865-0255
    • Fax : 044-865-0257
    • 서울취재본부 :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2877-12,2층(전원말안길2)
    • Tel : 010-2497-2923
    • 대전본사 : 대전광역시 유성구 계룡로 150번길 63 (201호)
    • Tel : 042-224-5005
    • Fax : 042-224-1199
    • 공주취재본부 : 공주시 관골1길42 2층
    • Tel : 041-881-0255
    • Fax : 041-855-2884
    • 중부취재본부 : 경기도 평택시 현신2길 1-32
    • Tel : 031-618-7323
    • 부산취재본부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안로 90-4
    • Tel : 051-531-4476
    • 전북취재본부 : 전북 전주시 완산동 안터5길 22
    • Tel : 063-288-3756
    • 법인명 : (사)한국불우청소년선도회
    • 제호 : 세종TV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세종 아 00072
    • 등록일 : 2012-05-03
    • 발행일 : 2012-05-03
    • 회장 : 김선용
    • 상임부회장 : 신명근
    • 대표이사: 배영래
    • 발행인 : 사)한국불우청소년선도회 대전지부
    • 편집인 : 김용선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선규
    • Copyright © 2024 세종TV.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e129@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