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춘향 존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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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춘향 존칭어
  •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시인, 평론가)
  • 승인 2018.04.05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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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시인, 평론가)

남을 공경하는 뜻으로 높여 부르는 말이 존칭어이다. 흔히 경어(敬語)라고도 한다. 존대해서 일컫는 경칭(敬稱)도 마찬가지 뜻으로 쓰인다. 예컨대 과거에 흔히 듣던 ‘폐하’ 또는 ‘각하’라는 존댓말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장유유서(長幼有序)를 지극히 존중해 온 우리의 관습은 경어사용에 익숙해 있다. 지구상에서 유독 우리 언어는 하대(下待)와 존대(尊待)의 두 가지 영역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언어라 자랑한다. 외국인은 배우기 어렵다고 하는데 말이다.

영어를 비롯해 아프리카의 스와힐리 언어 같은 경우도 한국어처럼 넓고 깊게 수렴되는 의미영역이 없다. 많은 사람이 중학교 영어 시간에 “디스 이즈 마이 화더(This is my father)”라는 문장에 아연실색한 경험이 있을 게다. 어디 제 아버지를 가리켜 감히 ‘디스’ 라고 할 건가. ‘this’는 물건을 가리키듯 ‘이것’이라는 뜻으로만 알고 있기에 언감생심 그런 호칭을 도저히 납득하지 못 했던 게 아닌가. 그게 ‘이 분’이라는 함의를 가지고 있는 걸 몰랐던 것이다. 영어 대명사의 미묘한 지시어 개념이 재미있지 않은가.

지금 우리 언어의 우수성을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말의 난맥상과 더불어 경칭사용의 변덕스러운 변화를 진단하면서 그 아첨(阿諂) 행태 따위를 지적하려는 것이다. 남의 환심을 사려고 애써 살랑거리는 말을 할 때 으레 소름이 끼칠 만큼 징그럽지만 그 말에 잔뜩 부풀어 오르는 멍청한 위인도 있기 마련이다. 제 몸을 낮춰가면서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고 알랑거리는 말에 우쭐해서 경거망동하는 기분파 인간이 있기에 두서없는 경칭사용이 횡행한다.

중국이나 일본이 황제(皇帝)나 천황(天皇)을 섬기면서 ‘폐하’라는 존칭어를 항용(恒用)했다. 그러면서도 왜인(倭人)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과 영국의 처칠 수상을 싸잡아 ‘지꾸쇼(畜生)’라고 불러댔다. 짐승, 개·돼지라고 못되게 일컬었다. 교육부의 나향욱 정책기획관이 우리 국민 대중을 개·돼지라고 불렀다가 파면 당하는 일이 있었다 싶이 그런 몹쓸 말을 호칭으로 사용했다가 일본이 패전의 비극을 맞았던 게 아닌가. 그토록 호칭은 무서운 위력을 지니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뜻으로 ‘--분’이라고 쓰는 말이 어쩐지 생경하고 구차한 느낌이 든다. 병원에서 ‘환자분’, 백화점에서 ‘고객분’, 택시운전자를 ‘기사분’ 등 사람을 가리킬 때 높여서 하는 말이 아무래도 우리말답지 않은 느낌을 준다. 그 ‘--분’이라는 게 ‘여러분’, ‘양위분’, ‘윗분’ 등으로 쓰일 때 이 ‘--분’은 분명 ‘分’으로 표기되며 높임말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사장님’이라고는 쓰지만 ‘사장분’은 쓰이지 않는다. ‘대퉁령님’도 어석한데 ‘대통령분’은 어떠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참 어렵다.

    

종편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하는 페널들의 언어구사력이 요사이 매우 역겹게 들린다. 별로 들어 보지 못 한 대학의 해괴한 직책을 가진 교수나 간판도 제대로 보지 못 한 기구의 어느 책임을 맡은 사람이 방송국의 입맛 따라 지껄이게 오리엔테이선을 받고 나오니 그러련 하고 그냥 넘겨버리지만 그들이 쓰는 존칭어에 거부감이 생기는 게 일반적인 경향인 것 같다. 안 하던 짓을 하니 보기도 듣기도 싫어진다. 내둥 쓰지 않던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님’이라고 얼렁뚱땅 존대하는 꼴이 너무 가소롭지 않은가. 언제부터 그렇게 존대했나.

게다가 북한공연을 다녀온 방북예술단의 어느 가수는 ‘리설주님이랑’ 조금 대화를 했다고 자랑했다. 언제부터 리설주에게 ‘님’자를 부쳐줬는가. 한낱 노래하는 사람이 지껄인 것이라서가 아니라 경칭사용이 무분별한 단계에 왔기에 씁쓸한 감정을 갖게 되는 게 못 마땅해서 하는 말이다. 너무나 갑작스런 존칭의 남용이 닭살 오르게 한다는 말이다. 김정은이와 악수한 게 뭐 대단한 영광이라고 하는 판국이니 딴따라의 행실이야 어쩌겠느냐고 흘려버리자고 한다. 억지 춘향 격으로 경어와 경칭과 존칭을 남용, 난용하는 짓은 삼가는 게 되레 예의 바른 언어활동인 것을 잘 알아야 한다.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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