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쟁이 선생님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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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쟁이 선생님 JP
  • 윤 기 한(충만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 승인 2018.06.23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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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기 한(충만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수필가, 평론가)

우울한 토요일이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께서 별세하셨기 때문이다. 최다선(9선) 국회의원을 지내신 정치 거목이 세상을 뜨신 오늘 나는 고등학교 정례동창회를 주관하느라 부고 소식을 늦게 들었다. 내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에 JP 선생님은 바로 아래 학년을 담임하셨다. 대전사범학교 부속국민(초등)학교에 교사로 재직하시던 시절 얘기이다. 어설픈 에피소드 같지만 선생님의 청년시절을 회상케 되는 시간이다.

이 대전사범학교 부속국민학교는 광복되기 2년 전에 개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갑작스런 개교준비과정에서 초등학교 전 과정 학급을 편성하느라 대전의 두어 군데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차출했다. 나는 당시에 대전삼성국민학교 3학년이었다. 차출대상 학생을 선발하는 과정은 정말 웃기는 짓이었다. 같은 반의 짝궁 끼리 ‘가위바위보’를 해서 지는 학생이 차출되었다.

나는 여자 담임선생으로부터 ‘가위바위보’의 경쟁기회마저 아예 박탈당했다. ‘가위바위보’ 방식을 통고하기도 전에 그 뚱보 일본여인은 ‘히라미즈 기깡(平水基漢 일본창씨명)은 무조건 차출대상이라고 학급 학생들에게 공언해버렸다. 미운 털이 박힌 내게는 일종의 사형선고였다. 당시로서는 너무도 가혹한 날벼락이었다. 새로 생기는 학교에 가는 것을 고생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 전화위복의 행운이 나를 감싸 주었다.

’가위바위보‘에 진 학생들은 아이고 땜을 놓고 울어 제쳤다. 교실이 통곡의 현장이 되었다.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치러진 ’가위바위보‘는 어쩌면 학생의 운명을 좌우하는 단두대나 매한가지로 공포감으로 어린 학생들을 폭압했다. 그렇거나 어쩌거나 아예 싹수마저 끊겨 버린 나는 오히려 놀라지 않고 울지도 않았다. 무덤덤하니 그냥 받아드리기로 마음먹었다. 뭐 큰 용기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새 학교로 가면 호박덩이 같은 담임을 안 볼 게 좋았기 때문이다. 그 여자의 처사는 못내 지워지지 않는 유채화로 남아있다.

그런 과정을 지나 새 학교라는 데를 가보니 무슨 폐기된 공장의 창고 두 채와 2층 사무실이 있는 건물 하나가 교사였다. 온갖 쓰레기와 오물이 쌓인 창고를 청소해서 칸을 막고 수업을 하니 기가 막혔다. 아직 가시지 않은 구린내와 옆 교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공부는 정말 저참이었다. 마치 패잔병 군상처럼 축 쳐진 어깨에 힘 빠진 걸음걸이가 참으로 가련해 보였다.

이런 참상을 기억하기도 싫지만 JP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하시고 교편을 잡으신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길게 객설을 늘어놓았다. JP 선생님은 당초에 공주중학교(구제)를 졸업하고 대전사범학교 고등과를 수료하셨다. 부속국민학교 6학년(1 개 학급) 학급에서 교생실습과정을 마치셨다. 모의고사채점을 실수하신 JP 선생님이 하필이면 내 답안지 채점과정에 오류를 범하셨다. 그 인연으로 후일 정치인 JP 선생님과 자리를 함께 한 적이 많다.

    

아직 학기가 끝나지 않은 어느 날 아침 운동장 조회시간에 교감(교장 대리)선생님 훈화가 끝나고 JP 선생님이 대형 교단에 오르셨다. 본시 미남 멋쟁이, 지금 표현으로 스마트 댄디(smart dandy) 선생님이 쪽 빠진 감청색 정장 차림이었다. 아직도 일제의 복식이 그대로 통용되던 시기라서 양복 윗저고리의 칼라는 목을 둥글게 감싸 정갈하고 단정한 자태를 돋보이게 했다. 원래 훤칠한 키에 헤어스타일도 일품이라 멋쟁이 선생님은 별당 아씨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풍기셨다.

성우의 숙련된 음성 보다 더 차분하고 참한 말솜씨로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JP 선생님은 첫 마디로 “나는 서울대학교에 가기 위해 오늘 너희와 작별한다”고 폭탄선언을 하셨다. 그 순간 “나도 저 선생님처럼 멋진 선생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마디로 JP 선생님에게 반했던 것이다. 내 모의고사 채점을 잘못 해서 잠시나마 내가 1등이 2등이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무작정 선생님을 닮고 싶었던 게다.

그러다 5·16 혁명이 일어났다. 검정 선글래스를 낀 멋쟁이 사나이의 출현은 전 국민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러다 싶이 혁명주체세력의 핵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듣고 너무나도 깜짝 놀랐다. 저간에 통 알 수 없었던 선생님의 동정이었지만 ‘역시나’를 연발할 상황이 되었다. 언제나 ‘제2인자’로 머문 정치행보는 아쉽지만 대한민국의 정치지도를 조종하며 위국충정을 다하신 공적을 높이 흠모하며 선생님의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숨겨졌던 선생님의 생전 모습을 외람되이 그려보았다.

 

윤 기 한(충만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수필가,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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