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은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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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은 위험
  •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 승인 2018.10.30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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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평론가)

교통사고 뉴스에 입이 딱 벌어진다. 20대 젊은이 두 사람이 자동차 운전 솜씨를 겨루자고 해서 교통사고를 저질렀다. 시속 77킬로미터의 속도로 번잡한 서울시내 한복판을 누볐다가 일을 저지른 것이다. 좌충우돌하는 곡예운전 끝에 가로등을 무너뜨리고 부서진 자동차를 내동댕이치고 도망쳤다. 택시와 충돌해서 택시기사에게 중상을 입히고 도주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몇 시간 만에 체포된 모양이다. 웃지 못 할 춘사(椿事)를 그 녀석들은 오락으로 치부했을 게다.

이런 사고는 심심찮게 일어났다. 아니 자주 일어난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무법행동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지 오래 되었다. 고급외제 승용차를 타고 굉음을 발생하며 심야에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행동이 한 때 서울의 부유층 자식들이 선호하는 스포츠요 게임이었다. 경찰이 법으로도 막지 않고 방치하며 어쩌면 함께 관전하는 즐거움을 공유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만큼 어설프게 단속하는 바람에 순진한 시민만 희생을 몽땅 받아들여야 했다.

이런 세태는 국가적 비희극(悲喜劇)이다. 젊은이들이 속도감에서 얻는 쾌감은 형언할 수 없는 엑스터시(ecstasy)이다. 진짜 입신(入神)의 경지에 들어서는 황홀감이며 광희(狂喜)임에 다름 아니다. 한때 우리는 ‘빨리빨리’를 신주 모시듯 했다. 만사를 빨리 해내야 살아남는다고 생각했다. 이 '빨리빨리‘ 덕분에 우리나라의 발전이 속도를 냈다는 궤변이 득세할 정도였다. 무조건 빨리하는 것만이 매사에 지상목표였고 빨리 끝내야 푸짐한 포상을 받았다.

그러나 ‘빨리빨리’가 외국에서도 알아주는 한국민의 유니크한 속성이라 해도 그 장점만이 칭송할 건 아니다. 빨리 올라간다고 사다리를 건너뛰면 어찌 되나. 다리가 사이에 빠지고 급기야 사다리가 넘어진다. 그러면 올라가던 사람은 땅바닥으로 떨지는 게 아닌가. 속절없이 궁둥 방아를 찧고 어딘가가 부러진다. 서둘다 큰 코 다치는 격이 아니던가. 그러기에 조상들 말씀에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 꿸까”라고 일러 주셨다. 그게 바로 천리(天理)라 하잖나.

아무리 하고 싶어도 모든 건 순서가 있다. 쉬운 말로 어른이 부러워 나이를 빨리 먹게 해달라고 산신령께 두 손 모아 빌어봤자 허탕이지 않았던가. 옛날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학교에서 ‘월반(越班)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공부 잘 한 학생이 학년을 뛰어넘어 진급하는 특례였다. 수재가 받는 혜택이었다. 하긴 지금도 조기 졸업이라는 방식으로 학점을 먼저 이수 완료한 성적우수학생이 정규과정을 일찍 마치는 경우가 있다. 이건 일종의 특혜에 속한다.

국가의 경영에도 월반이나 조기졸업제도가 적용될 수 있을까. 성급한 사람의 성취감을 충족시켜준 ‘빨리빨리’가 아무데나 쓰임새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한 나라를 다스리고 이끌어 가는데 ‘빨리빨리’가 과연 특출한 효과를 내서 국가의 안위를 보장하고 국민의 행복을 제대로 마련해 줄 것인지 궁금하다. 이 조급성을 재미있게 풍자한 우수개 소리가 있다. 옛날 옛적 어느 겨울날 봉이 김선달이가 남긴 헛소리이다.

그 봉이 김선달이가 저녁 무렵에 어딘가를 지나다 강가에 이르렀다. 그곳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무언가를 논의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듣자하니 동네 부자 영감이 사위를 얻으려고 시험을 치루는 참이었다. 젊은 사윗감들이 부자 장인의 눈에 들으려 한참 부산을 떨고 있었다. 성품이 조급증으로 단단히 굳어 있는 영감이 차디찬 강물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고 사위로 삼겠다고 선언한다. 얼마나 빨리 강물에 몸을 던지느냐에 따라 합격 여부가 갈린다. 웃긴다.

    

한 젊은이가 부지런히 갓을 벗고 두루마기를 벗고 강에 뛰어든다. 헛수고였다. 낙제하고 말았다. 영감의 성미에는 느림보로 치부된 것이다. 당시에는 의관을 몹시 존중한 탓에 최소한 갓과 두루마기는 벗어야 도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러자 다음 젊은이는 갓을 벗어 던지는 순간 강에 몸을 던졌다. 그러나 영감의 고개는 옆으로 돌아갔다. 물론 퇴짜를 맞은 것이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봉이 김선달이 후닥닥 강에 뛰어들었다. 갓도 두루마기도 입은 채였다.

게다가 영감에게 인사고 뭐고 없이 해댄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왔던가. 오케이 사인이 나왔다. 대짜고짜 무작정 덤벼든 봉이 김선달이 조급증 환자 영감에게는 최고최선의 사윗감이었던 게다. 김선달의 통쾌한 승리였다. 그날이 마침 섣달그믐이고 저녁나절이었다. 그러니 한 살이라도 덜 먹어서 시집을 보낼 요량이었던 영감님이 혼인식을 올렸다. 혼인은 본시 저녁에 치루는 관습에도 딱 맞아떨어졌다. 금세 신방이 꾸려졌다. 행복에 젖은 봉이 김선달이 부럽잖은가.

헌데 아뿔사 야단이 났다. 이른 새벽에 신방에서 신혼부부의 싸움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영감이 듣자하니 기가 막힌다. 신랑 봉이 김선달이 큰 소리한다. “어제가 섣달그믐이고 오늘이 정월 초하루이니 일년이 지나지 않았느냐. 그러하거늘 아직 애가 없잖은가. 그게 칠거지악(七去之惡)일진대 내 너를 버릴 수밖에 없느니라”하고 야단을 치고 떠나버린다. 부자영감 말을 잃고 넋마저 잃었다. 속수무책이로다. 잔치 잘 먹고 신부와 잠자리 잘하고 떠난 김선달이여.

이 허무맹랑한 개그가 일러주는 뜻을 우리는 명심해야한다. 더욱이 정치인은 그 상징성을 잘 터득해야한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너무 성급하다. 서툴기도 하다. 종전선언이 곧 평화정착이라고 오판하고 있지 않나 걱정된다. 경제협력이 바로 통일을 가져올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닌지 두렵다. 구태여 CVID를 들먹이지 않아도 아직 비핵화 완결이라는 호사는 오지 않았다. 요원한 숙제풀이를 ‘빨리빨리’로 결단하려는 조급증병 일랑 들지 말기 바란다.

미국도 한국의 조속(早速). 과속(過速)에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엄연히 그리고 엄중히 수용해야 잘 하는 일이다. 괜스레 봉이 김선달에 혼이 나간 부자 영감 신세가 제발 되지 말지어다. 얼핏 남북군사합의나 종전선언을 가지고 미국과 이견을 보이며 미적거리지 말아야 한다. 대북제제완화를 서두르니 그런 나발 불지 말라고 많은 선진국이 잔소리를 해댄다. 그런 판국에 야당까지 부정적으로 나오는 태세가 국민의 불안을 점증시킨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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