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방정 그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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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방정 그만 하고
  •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 승인 2018.11.21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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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평론가)

버릇없이 까부는 말이나 행동을 가리켜 ‘녹두방정’이라고 한다. 경거망동하는 행위를 말한다. 본시 ‘녹두’야 식물로서 한해살이풀이다. 팥과 비슷하고 빈대떡을 만들어 먹는다. 녹두는 씨앗이 작아 고종 31년에 농민군을 이끌고 전라도 일대를 석권했던 전봉준을 녹두장군으로 불렀다. 어려서 키가 작아 부쳐진 별명이다. 이른바 '동학란'의 리더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 녹두장군이 동학 농민군을 이끌고 반봉건주의 기치를 올렸지만 끝내 농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지는 못했다. 그래서인지 ‘녹두방정’은 불발 쿠데타처럼 처량하게 사그라진 실패와 좌절의 의미를 내포한다. 흔히 행동거지가 경솔하고 주책없을 때 “녹두방정 떨지 마라”고 책망하는 경우에 사용되는 말이다. 별로 듣고 싶은 말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이 기피어(忌避語)가 우리 주변을 맴돈다. 특히나 정치권에서 더 두드러지게 사용되고 있지 않나 싶다. 너무 서둘러 대는 정치행태가 경박하고 신중하지 못 해서 듣는 판국이다. 원전폐기가 그 첫째 서열에 든다. 아랍에미리트에 수출한 원전은 세계적인 호평 속에 천문학적 재정소득을 올린다. 이 보물단지 원전을 까뭉개는 바람에 세계가 까무러쳤다. 기절초풍할 일이 아닌가.

이건 돈타령이 아니다. 옛날 산업혁명은 18세기 영국에서 방적기의 발명과 인쇄술의 발전으로 시작해서 해가지지 않는 대영제국으로 발돋움해갔다. 현대의 산업혁명은 전기생산으로 가름된다. 모든 기계는 전기전자로 움직인다. 군사무기도 여기에 포용된다. 인류의 생활 패턴 어디에서나 전기전자가 독불장군의 위력을 갖는다. 필수불가결의 귀중품이다. 그걸 뒷발로 걷어차고 있으니 딱할시고.

나라살림이 그래서 뒷걸음질을 하고 있다. 그야 보릿고개를 겪어 봤길래 초근목피로 생명유지를 한다고 쳐서 대수이겠건만 핵폭탄을 머리 위에 이고 살아가야하는 우리의 고생과 불안과 공포는 어쩔 것인가. 남북 간의 정상이 회담을 거듭하고 평화가 금방 코앞에 다가오는 착각과 환상이 우리를 가지고 공놀이를 하는 바람에 부득불 ‘녹두방정 그만 하고’를 외치지 않을 수 없는 게 아닌가.

오늘 아침 조선일보 A6면에 실린 ‘대북제재 완화 요청, 文대통령의 실수라고 생각’이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대사의 말이다. 아세안(ASEAN) 정상회의 등에서 문 대통령이 애걸복걸하다 싶이 한 북한에 대한 제재완화요청을 비판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그는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방송 대담 프로그램에서 “한국은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 조치 없이 제재가 완화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북한에 보내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가 우리말을 할 줄 안다면 곧 ’녹두방정 그만 하고‘라고 했을 게 아닌가.

    

그는 청와대가 서둘러 북한에 보낸 귤 200톤 문제에 관해서도 섬뜩한 말을 했다. “한국이 미국 등 동맹국과 충분한 상의를 하지 않았다”고 비꼬았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필요악과 같은 동맹국간의 상의와 협의는 아름다운 예의이고 도리이다. 그걸 그리도 쉽게 버리는 건 국가 간의 도덕률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아니, 그건 몰염치이고 몰상식이다. 그러니 ‘녹두방정 그만 하고’ 속 차리는 게 좋지 않겠는가.

더구나 ‘방정’이란 말은 좋은 뜻도 가지고 있다. 초중고 학생들의 생활기록부(현행명칭은 학적부?)에 학급 담임 선생이 학생의 학습태도나 생활습성을 관찰해서 다른 학생의 모범이 됨 직하다고 판단했을 때 기재하는 용어 ‘품행방정’이 바로 그것이다. 꼰대 선생은 웬만해서 이 ‘품행방정’을 주지 않는다. 그 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짠돌뱅이 쌤’으로 낙인 되고 만다. 이 선의의 ‘방정’ 품격을 받는 정치가 득세하기를 바란다.

 

떡 줄 생각(핵 폐기)도 않는데 김칫국(제재완화)부터 마시는 짓은 칠뜨기가 하는 꼴이다. 앞뒤가 아직 안개 속이라 잘 분간이 안 가는데 철도를 연결해서 유러시아를 누벼보고 싶다 커니 김정은이 방남(?)한다고 떠들어대니 ‘백두칭송’이 나발을 불어대고 대형 현수막 사진이 올라가는 풍경은 자칫 텔레비의 72번 채널을 시청하는 애니메이션 아동만화 같아 보인다. 그러기에 ‘녹두방정 그만 하고’ 진짜 ‘평화무드 살리기’에 국민 모두가 공감하게 만들지어다.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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