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이여 어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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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이여 어서 오라
  •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 승인 2018.12.23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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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평론가)

제2차세계대전이 완전히 종결된 날은 1945년 9월 2일이다. 일본은 이보다 앞서 같은 해 8월 15일에 항복 선언을 했다. 그날 한낮에 이른바 일본 ‘천황의 옥음방송()’이 있었다. 일본군대의 무조건 항복을 권유한 포츠담 회담을 수락한 일본의 히로히또 왕이 일본의 중앙방송 NHK를 통해 전 국민에게 보도한 종전 항복문서의 낭독이었다.

이날 나는 대전경찰서 정문 앞 뜰층계(뜰팡)에서 이 방송광경을 목도했다. 일본이 말하는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의 막바지였던 그날 아침부터 마초()를 꺾고 송근()을 캐러 학교 한반 친구들과 ‘구마니’라는 곳에 갔었다. 거긴 지금의 대전산업단지 자리이다. 내 외가가 바로 눈앞에 있는 대덕구 대화동이다. 작업 도중에 나는 인솔한 선생의 눈을 피해 친구들을 외면하고 이 작업장을 혼자 도망쳐 나왔다.

학교가 끝나면 으레 대전역에서 옛 충남도청으로 뻗어 있는 길을 걸어 집으로 온다. 그 길섶에 3층짜리 건물이 있다. 한때 대전상공회의소가 자리했던 곳이다. 지금의 삼성생명빌딩이다. 당시에 대전 시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어린 마음은 이 곳에 올라가는 재미에 쏠린다. 슬그머니 계단을 기어 올라가다 경비 아저씨에게 들키면 혼쭐이 난다. 그래서 약간의 모험작전이 필요하다. 후다닥 뜀박질로 꼭대기까지 달려간다. 무사히 올라가는 행운은 정말 기막힌 즐거움을 제공한다. 호기심 충족과 함께 아래를 내려다보면 사람들이 콩알만 하게 보이니 얼마나 우쭐해지는가.

 

스릴 만점의 3층짜리 빌딩정복을 잘 마무리하고 나면 도청 앞에 있는 대전경찰서 자리로 발걸음을 옮긴다. 긴 칼을 찬 옛날 일본 순경들은 얄밉고 무서우면서도 신기했다. 어린 눈에 단단한 제복에다 절도 있는 태도가 얼핏 그럴 듯해 보였던 게다. 그것도 동심에 어리는 매력이었던가. 건물 안쪽이 언제나 궁금하기도 하다. 그날도 궁금한 김에 안쪽을 무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도둑이 제발 결린다고 송근 캐기 작업을 빼먹고 도망쳐 나온 김이라 마음도 싱숭생숭했나 보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사무실 창 너머로 보이는 순사들이 모두 일어서 있다. 줄지어 서다 싶이 하고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 처음 보는 광경이다. 누구 하나 미동도 하지 않고 꼿꼿하다. 왜 저러고들 있는가. 까까머리 중대가리로 멍청한 모습에 내심 놀랬다. 저런 꼴을 본 적이 없으니 더욱 이상해 보인 것이다. 거기에 라지오(래디오)방송이 희미하게 들린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안 보던 광경이 놀라웠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뜰층계에서 왼쪽 다리가 풀려 그냥 바닥으로 발을 내렸다.

뭔지 몰라도 심상치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심은 그걸 금세 잊어버렸다. 도청 담장을 올라타고 장난을 치며 걷는 재미에 끌렸다. 담장은 큰 돌로 밑둥을 감싸 올려서 그 자리에 올라 앵글 울타리를 잡고 걷는 게 꽤나 즐거웠다. 그렇게 장난 끼 어린 하교 길은 외로운 초등학교 학생에게 자그마한 위안을 안겨 주는 행로였다. 저녁 밥상머리에서 아버지가 일러 준 일본의 항복 선언을 알아들은 게 8⸳15광복(해방)이라는 엄청난 역사적 사실이다.

그 뒤 2학기 수업은 일본어가 아니고 우리말로 진행되었다. 대전사범학교의 부속국민학교였기에 일본식 교육방식이 금방 바뀌지 않았다. 사범교육의 우선순위 대접을 받아 중학교와 같은 교수방법이 실시되었다. 과목별로 담당 선생이 따로 수업을 진행했다. 학급 담임교사가 전체 수업내용을 모두 진행하는 여느 초등학교 방식이 아니었다. 국어담당 선생님은 국어과목만 맡아 가르치고 국사 선생님은 국사과목만을 수업하는 방식이다.

 

국사 선생님이 단군신화를 소상하게 알려주셨다. 곰이 뭘 먹고 동굴에 들어가 있다가 나와서 단군을 낳으시고 ‘홍익인간’을 내세웠다고 일러주셨다.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말이다. 옛날에 하느님인 환인의 아들 환웅이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 싶어 했단다. 그러자 아버지환인이 아들의 뜻을 알고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고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기에 적합한 곳으로 여겨 아들 환웅에게 천부인 세 개를 주며 인간 세상에 내려가서 다스리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환웅이 풍백(風伯) · 우사(雨師) · 운사(雲師)를 비롯한 삼천 명의 수하를 이끌고 태백산 정상의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그곳을 신시(神市)라고 일컬으며 다스렸다. 그 때 곰과 호랑이가 환웅에게 인간이 되게 해 달라고 간청해왔다. 이들의 간청을 들은 환웅은 쑥 한 자루와 마늘 20쪽을 주면서 그것을 먹고 100일간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곰은 시키는 대로 하여 삼칠일 만에 여자로 변하였으나 호랑이는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 사람이 되지 못했다.

    

이 곰이 웅녀(熊)로 혼인할 상대가 없어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 갖기를 기원자 환웅이 잠시 인간으로 변해 웅녀와 혼인해 아들을 낳았다. 그가 단군 왕검이란다. 이런 단군신화에 입각해서 선생님은 홍익인간의 교육이념을 아주 소상하고 정확하게 지도하셨다. 그 가르침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릴 때의 세뇌교육이 엄청난 위력을 가졌구나 싶다. 지금 당장에도 홍익인간의 실천이 필요하다. 세상이 하 수상하니 더욱 홍익인간의 참뜻이 그립다.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착해야 한다. 만사를 선의로 수용하고 실천해야 한다. 남을 미워하지 말아야 홍익인간이 된다. 마늘 20쪽이 입에 들어가면 크나큰 인내가 필요하다. 참고 견뎌야 한다. 매운 맛에 눈물이 흐른다. 그 매운 맛을 이겨내야 참다운 인간미를 익힐 수 있다. 그래야 홍익인간이 이루어진다. 큰 빌딩의 프래시 도어가 앞뒤로 휙휙 여닫치는 걸 그냥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열고 닫으면 뒷사람 이마가 깨질지도 모른다. 이런 무분별 행위를 극복해야 홍익인간이 된다.

요즈음 ‘감찰반’사건이 매스컴의 등을 타고 있다. 남의 뒷조사를 하는 것은 홍익인간이 아니라 ‘홍해인간()’인간의 행위이다. 전폭적인 적폐청산이 홍익인간의 모토라면 적폐재생산은 홍해인간의 생태에 불과하다. 국회의원이 국해의원()이라는 닉네임을 받는 것도 국민의 대변자가 아니라 특권을 마구 누리며 국민에게 해독만 끼치기에 듣는 악명이 아니런가. 불과 몇 달 안 된 애송이 국회의원 김정호가 공항직원의 공무를 갑질이라고 투박하는 것도 홍해인간의 DNA가 발작했기에 벌어진 추태가 아닌가. 선민의식에 함몰된 국해의원의 전형이 아닐 수 없잖나. 욕을 하지 않았다는 노무현맨(마지막 호위무사) 본인의 구차한 변명에도 불구하고 그가 발토한 “이 새X들. . .”은 욕이 아니란 말인가. 진짜 홍해인간을 그가 자랑하는 게 아닌가. 오히려 크레인 노동자로 의인상을 받은 사람은 마땅히 홍익인간의 범주에 든다.

 

청와대가 지껄여 댄 ‘미꾸라지’ 김태우는 홍익인간인가 아니면 홍해인간인가. 민간인 사찰의혹을 만든 장본인으로 지목되는 그가 제공한 사찰정보는 야당의 기세를 올려 정치권을 심란하게 만들어 놓고 있다. 나라가 온통 안절부절 야단들이다. 사람마다 사찰을 당하고 있지 않나 하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장사하는 사람도, 막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도, 아니 멀쩡한 화이트 칼러들도 사찰대상이 아닌가 걱정을 한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에 배운 진짜 홍익인간을 만나고 싶다. 인정이 많다는 말을 듣는 한국인심이 날로 홍해인간으로 변질하는 게 정말 못 마땅하다. 속이 상한다. 어쩌다 이런 꼴로 살아가야 하는지 궁금하다. 텔레비전 화면에 하고 많은 사람이 수갑을 차고 끌려 다니는 꼴을 보게 되니 이 나라는 홍해인간 투성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술 먹고 사람 치어죽이니 윤창호법이 나왔다. 수리비 3억 원이 아까워 젊은 근로자를 죽게 한 큰 회사 사장을 살인자로 개념화하는 세상이다. 어지럽기 그지없다. 그러니 홍익인간이여 어서 오라. 나라 살리기에 매진하자. 경제실정은 지금 한창 홍해인간의 몫이 되어 있다. 어쭙잖게 얻은 권력을 제대로 쓰지 못 하는 탓으로 나무라기도 애처롭다. 우리국민은 본시 착하고 순한 홍익인간이기에 서둘러 조상이 물려준 ‘의 홍익인간’으로 돌아갈지어다.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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