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의 언어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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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의 언어품격
  •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 승인 2019.02.18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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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평론가)

며칠 전 아침 신문에서 읽은 기사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법관이라는 사람들이 끄적거려 놓은 글이 치사하고 옹졸하기 그지없기에 그렇다. 32년이라는 긴 세월을 법원에서 살아온 사람에게 던진 댓글이라는 게 게욱질 나는 소리라서 못 마땅하다. 신문의 짧은 기사이기에 자세하고 정확한 내용은 알 길이 없지만 독자로서의 소감만으로도 불쾌감을 지울 수 없다. 흔하고도 흔해 빠진 지칭어로 ‘법과 양심’의 실체라고 대우하는 법관의 언어품격이 너무나도 어설프고 엉뚱해서 기가 찬 것이다.

지난 13일에 울산지방법원장직을 물러난 최인석 전 원장이 법관전용 온라인망에 올린 글이 젊은 판사들의 공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퇴임 직전 “살아서 역사의 증인이 돼라”는 제목의 글에서 ‘작금의 시대상황에 대해 후련함과 통쾌함을 느끼는 분도 계실 것이고 울분과 치욕과 수모를 느끼는 분도 계실 것’이라며 이어서 “후자 쪽인 여러분, 이 치욕과 수모를 참고 견뎌서 역사의 증인이 돼라”고 썼단다. 이에 진보(찜뽀)성향의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판사가 발끈했다는 게다. “후련하지도 통쾌하지도 않으며 (일부 판사들의) 거짓과 은폐로 울분이 많이 쌓였다”며 반박하고 나선 모양이다.

이에 최 전 법원장이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며 사과를 했단다. 얼핏 생각건대 40대의 젊은 차성안 판사의 반박문에 퇴임사 같은 말을 한 걸 꼭 사과할 사안인지 궁금하다. 더욱이 소신 있는 자기주장을 피력한 게 무슨 큰 죄라도 되는 건지 납득하기 어렵다. 어느 부장판사가 그 뒤에 “(최 전 법원장은) 법원에서도 인생에서도 선배이시다. 떠나시는 소회도 못 밝히나”라고 항변의 글을 올렸단다. 용기 있고 예의 바른 부장판사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런데 차 판사라는 사람이 또다시 댓글을 달아 덤벼들었다. “(최 전 법원장이) 사법농단 사태에 대해 성찰과 반성의 말씀은 없으시고 . . . 그게 떠나는 분이 하실 말씀인가. 그리고 선배판사, 후배판사라는 말도 이 참에 버리면 좋겠다. 초, 중, 고, 대학도 어니고 모두가 동등해야 할 법원에서”라고 투덜댄 모양이다. 왜 하필이면 초, 중, 고, 대학의 선후배 탓을 하는가. 망측하도다.

 

그렇게도 듣기 싫은 게 선후배라는 어휘인가. 세상만사에 차례가 있다. 진즉부터 사회질서가 그래서 존재한다. 난해한 고전문헌을 인용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하는 법관이 질서의식을 그토록 증오한다면 자기 모태의 생산기능을 먼저 저주하고 질타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남보다 더 일찍 태어나고 더 먼저 고시합격의 감격을 누리지 그랬느냐고 묻는다면 그에 답변은 무엇인가. 게다가 구태여 끄집어 낼만한 건더기조차 없는 사법농단 운운은 역지사지 (易地思之)의 염치마저 없는 헛소리에 불과하지 않은가. 김명수 대법원장도 사법농단을 철저히 조사하라며 그것을 지원하겠다고 단언했다. 누가 누구를 사법처리할 것인지 궁금한 게 국민들이다. 국민은 현명하다. 국민은 양심을 지니고 있다. 양심은 법관만의 전유물이 결코 아니다. 최고 양질의 양심이 중요하고 긴요하다. 선후배가 싫으면 독불장군 선배 노릇에 만취할지어다.

    

 

무릇 판사의 인간적 가치는 가장 보편적인 사고력과 판단력을 구비하는 데서 찾게 된다. 무리한 선입견과 위선적인 자만심으로 자기합리화에 함몰되면 자칫 판단의 오류와 억지를 감행할 위험이 있다. 판사의 신분을 탐하고 월급을 챙겨 일신의 안녕을 구가하는 것을 판사로 살아가는 것이라면 그것은 수긍할 수 없는 궤변이요 언어도단이라고 질타하는 오현석 판사의 말도 듣기에 고소한 맛을 준다. “최인석 판사님이 설마 판사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감행한, 이 시각에도 뻔뻔스럽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후안무치한 모씨를 가리켜 법원에 남아 있으라고 했겠느냐”고 자기와 반대성향의 판사들을 공격하는 역시 40대 판사도 있다. 판사의 권능이 고공추락 현상을 보이는 작금의 사법부 동체(胴體)가 깡그리 뭉그러져 있지 않은가.

나 자신 ‘민사가사’ 조정위원으로 지방법원을 드나들며 사건을 다루어 본 입장에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여지없이 유린당한 사법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고매하고 고귀하고 고상해야 할 법관의 진면목이 진흙덩어리로 변질된 지금 선후배 판사라는 말을 염치없이 꺼내는 작태는 배설물을 자청해서 뒤집어쓰는 꼴이 아닌가. 돈벌이 꾼으로 안주하는 법관을 자처하며 상대를 능멸하는 작태를 서슴지 않는 청춘예찬자 판사들의 기개가 가증스럽다고 한탄하는 소리가 복지관의 어르신네 입에서 흘러나온다. 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신음인가. 법전을 암기하느라 밤낮으로 독수공방 신세를 면치 못 한 고통의 세월이 지금의 영광을 가져온 은혜를 살펴서라도 선후배 타령이나 이념편향성일랑 몽땅 내던져 버릴지어다. 법관의 언어품격이 상할까 두렵도다. 멍청한 소리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게 현자(賢者)의 도리인지라.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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