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의 귀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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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의 귀는 . . .
  •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 승인 2019.03.1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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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평론가)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설화가 세계적으로 구전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제 48대 경문왕에 대해 이 설화가 생겼다고 한다. 『삼국유사』 권2의 경문대왕조에 실려 있단다. 내용인즉 경문왕이 왕위에 오른 뒤 갑자기 귀가 길어져 나귀 귀처럼 되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왕의 두건을 만드는 복두장(幞頭匠) 한 사람뿐이었다. 그는 아무한테도 이것을 말하지 않다가 죽을 때가 되어 도림사(道林寺) 대나무 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 존엄한 임금의 망측한 흉상을 마지막으로 고백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남긴 말이 그 뒤에 바람이 불면 그 때마다 대나무가 서로 부딪치며 ‘우리 임금님의 귀는 나귀 귀’라는 소리가 났다. 이 소리는 바람을 타고 전국에 퍼져나갔다. 이에 왕이 대나무를 모조리 베어내고 그 자리에 산수유나무를 심도록 했다. 그러자 이번엔 “임금님의 귀는 길다”는 소리로 바뀌어 났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비슷한 설화가 있다. 대나무는 군자(君子)의 인격체로 표상되어 왔다. 일 년 4계절 내내 꼿꼿하니 부러지지 않는 자질을 지녀 불효불굴(不撓不屈)의 절개를 자랑한다. 그런 대나무 숲에서 들리는 소리야말로 진실을 전한다.

그처럼 큰 당나귀 귀로 민심의 함성을 널리 그리고 뚜렷하게 들어야 하거늘 귀가 길고 큰 게 볼성 사납다고 감추기에 급급한 경문왕이 안쓰럽다. 참으로 못 났던 모양이다. 어쩌면 칠칠맞기 그지없는 임금이 아니었나 싶다. 며칠 전 국회에서 일어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발언을 둘러싼 시비(是非)는 그야말로 경문왕도 울고 갈 못난이들의 처참한 모습을 만천하에 노출한 불행이었다. 야당의 원내대표답게 정부를 엄정히 비판하고 냉혹하게 정곡을 지적한 내용이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고함을 질러대고 자리를 박차고 회의장을 뛰쳐나가는 여당 국회의원들의 행태는 그야말로 국해의원(國害議員)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준 ‘쪼다’의 ‘진국감’이 아니런가.

지난 3월 12일 오후 국회의 연설대 위에 나선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차분하고 착실하고 침착한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참모습이었다. 국회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이라서 국회의원만이 아니고 전 국민이 경건하고 정숙하게 경청해야 마땅하다. 비록 그의 연설 내용이 자기 귀에 거슬린다 해도 아무쪼록 조용히 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임금님의 당나귀 귀를 활짝 열어 제치고 글자 그대로 지성적인 태도로 들어야 하는 것이다. 화자(話者)와 청자(聽者)간의 예의를 지키는 금도가 있어야 한다. 그런 품위가 없는 게 대한민국 국회란 말인가. 못나고도 또 못난 게 아닌가. 나 대표가 ‘밑도 끝도 없는 북 옹호’를 꼬집으며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 대변인이라는 낮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 달라고 발언했다.

이게 빌미가 되어 30여 분간 연설이 중단되었다. 복지관 TV앞의 노령인구 몇 사람은 나 대표의 발언 중단을 집어치우라며 연설 강행을 큰 소리로 재촉했다. 문희상 국회의장도 소란한 망나니 의원들의 자숙을 채근했다. 나 대표에게도 기록으로 남는 것이니 시끄러워도 발언을 계속하라고 요청했다. 단상을 점령한 여당의 원내대표라는 사람은 하품이 나올 정도로 너절한 행동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더불어 민주당의원들이라는 사람들은 나 대표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대통령모독’이라고 침을 흘리며 떠들어 고귀한 민의의 전당을 더럽혔다. 세간의 속언에 “소리 큰 놈이 이긴다”라는 게 있다. 큰 소리 질러대며 유권자들을 겁박해서 의원 금배지를 따 놓은 당상이라는 사실을 실증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는가.

대통령모독죄는 사멸된 항목이다. 더구나 나 대표의 발언 자체가 커뮤니케이션 학과목에서 말하는 의사소통의 관계에서 전혀 진실의 대목에 해당되지 않는다. 전달자인 나 대표의 말을 정확히 들어본 사람은 전달자로서의 나 대표 발언에 명예를 훼손하는 의미요소가 전무하다. 문 정권의 ‘운동권 외교’가 우리 외교를 반미, 반일로 끌고 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 말의 수신자는 누구라도 전달자의 걱정하는 마음을 읽게 되는 게 순리이다. 그리고 “북한에 대한 . . . 옹호와 대변, 이제는 부끄럽다”고 말했다. 화자는 자신의 수치심을 토로하는 말을 했다. 이런 말을 트집 잡는다면 초등학생들이 웃다가 기절할 노릇이 아닌가. 초등학교 국어공부를 제대로 받지 못 해서 국어이해능력이 모자란 게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런데 화자이며 전달자인 나 대표가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 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 달라”고 당부의 말을 했다. 무식한 수신자 국회의원이란 사람들이 이 말에 벌컥 소리를 질러 댔다.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했다. 몹쓸 망나니짓이 아닌가. 게다가 민주당의 대표라는 이해찬 의원은 ‘대통령모독’을 검찰에 고발을 감행하도록 지시했던가. 정말 까부는 아이들도 아니고 제 만큼 나이도 먹었고 국회의원 감투만이 아니라 그 보다 더 큰 감투도 써 본 경험자가 어설프게 업다운 댄스를 하는 모양새는 뭘 못 참고 바지 가랑이에 싸 뭉개는 꼴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나 대표가 ‘낮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 달라는 말은 그 발언 이전에 그가 들었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이건 커뮤니케이션의 abc이다, 기초이며 원칙이다. 이 말은 이미 작년 9월 26일 미국의 블룸버그통신 기사 제목으로 등장했다. 다름 아닌 “문 대통령이 유엔에서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Top spokesman)이 됐다”는 문장이었다. 물론 이 기사의 기자마저 만주당의 이해식 대변인에 의해 실명이 거론되고 ‘악명 높은 기사’로 몰매를 맞았다. 물론 이에 대해 서울외신기자클럽(SFCC)으로부터 ‘언론에 찬물 끼얹기’로 유감표시의 망신공격을 받았다. 그러기에 나 대표와 자유 한국당의 인기상승 곡선이 멋지게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 나 대표는 초강경 모드로 선회하면서 연일 대정부 맹공에 들어갔다. 정작 ‘의회 민주주의의 종언’이 오는 건가. 더불어 민주당의 종언이 오는 건가.

어리석은 임금이 당나귀 귀를 가졌다고 해서 부끄러워하고 감추기에 급급한 설화의 진의를 잘 음미해야한다. 길고 넓은 당나귀 귀를 가졌다면 더 많이 들을 수 있는 혜택을 감사해야 한다. 민심의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임금으로서 얼마나 귀중하고 보배로운 은혜인가. 대통령의 귀가 당나귀 귀라면 그거야말로 지상 최고최대의 호의(favor)가 아닌가. 세상의 말을 더 잘 듣고 더 잘 알아들을 테니 말이다. 블룸버그기자를 ‘매국노’로 치사하게 놀려대지 말고 ‘포용국가’를 앞세우는 대통령의 아량이 나귀의 귀보다 더 크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선다. 이른바 ‘비핵화 운전자’의 자리는 날라 갔어도 중재자의 자격은 잃지 말기를 바란다. 뉴욕타임스는 김정은이 문 대통령보다 더 나은 대리인(agent)을 찾기 힘들 것이라고 하는데 그런 범주에 낄 필요가 아예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게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의 진의가 아닌가.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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