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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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을 맞으며
  •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 승인 2019.05.1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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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평론가)

오늘이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 고마움을 마음에 새기는 날이다. 엊그제 제자 교수들로부터 오찬대접을 받았다. 으레 이맘때면 박사과정 지도를 받은 제자들이 찾아오고 함께 즐거운 식사 자리를 갖는다. 마음 흐뭇하기 이를 데 없다. 스승의 자부심을 북돋아주는 시간이다. 대학에서 정년퇴임한 반백의 제자 명예교수들과 더불어 담소를 나누는 재미는 어느 것에도 비할 수 없는 희열이다. 고맙기 이를 데 없는 회동이다.    

헌데 요즈음에는 스승의 날이 수난을 당하는 모양이다. 본시 선생님들의 은혜를 감사하고 지도편달에 보답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스승의 날이 정작 학교 현장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듯하다. ‘스승께 보답하는 날’이 아니고 ‘스승께 부담이 되는 날’이 되었다고 한다. 3년 전에 시행된 김영란법 이후 나타난 풍경은 ‘스승의 날’이 ‘불쾌한 날’ 또는 ‘기피하는 ’날로 추락하는 돌변 현상이 생겼다.

국민권익위원회라는 데서 시행하는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에 따라 우습기 짝이 없는 행태가 벌어진다. 스승의 날 꽃은 생화가 아니고 조화만을 선생님께 드릴 수 있다. 생화와 조화의 구별이 어떤 연유에서 발상했는지 궁금하다. 게다가 학생이 선생님께 달아주는 카네이션도 안 된다고 한다. 전교회장과 같은 학생대표만이 그나마 조화로 된 카네이션을 달아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웬 일인가!  

제자가 선생님에게 꽃 한 송이를 달아드리는 행위마저 이렇게 너절할 정도로 규제가 심하니 ‘스승의 날’이 존재할 이유가 없잖은가 싶다. 물론 ‘촌지’라는 명목의 악습이 오랜 관성으로 선생님들에게 금품을 제공해온 결과이지만 참으로 떨떠름한 제도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학생이 선생님에게 꽃을 달아드리던 풍경은 이제 먼 옛날 얘기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 “아 그리운 옛날이여!” 정녕 오래된 넋두리로 변모했나.

    

오늘 내게 예쁘고 풍성한 꽃바구니가 배달되었다. 반갑고 기쁘다. 대학교수인 제자가 보낸 것이다. 거기에 스승에 대한 제자의 다소곳한 사랑이 배어 있어서 황홀감을 안겨주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서 지방출신의 악조건을 당당히 극복한 제자의 용기와 능력을 항상 자랑해온 터라 더욱 고맙고 대견하다. 그러하거늘 이런 스승의 긍지를 짓밟는 만행이 선생님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는 말을 들으니 적이 속이 상한다.

얼핏 ‘잠재적 범죄자’라고 자괴감에 빠진 어느 선생님은 자기와 같은 선생님들이 청렴하지 못 한 이미지로 사회에서 매도당하는 것 같아 불쾌하고 어이가 없다고 말한다. 지난 1일 서울시교육청이 ‘스승의 날’을 맞아 ‘청탁금지법 퀴즈대회’를 진행한 모양이다. 참으로 못된 짓을 저질렀다. 항상 그런 정도의 못난이 발언과 과도한 인기몰이 행태를 즐기는 서울교육청다운 짓거리를 감행하니 선생님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겠는가. 이래서 분통이 터지는 선생님들이 ‘스승의 날’을 아예 ‘스트레스의 날’로 만들자는 자학적 불평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스승의 날’에 휴업으로 지저분한 말썽을 원초적으로 방지하는 학교가 많아졌다.

한때 몇 년 동안 대전 문화방송국에서 스승의 은덕을 기리는 칼럼을 방송한 적이 있다. 그런 게제에 은덕을 베풀어주신 많은 선생님에 대한 덕담과 감사의 말씀을 전해 드렸다. 지금은 사라진 학교이지만 대전사범학교 부속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잊을 수 없는 선생님이시다. 졸업후 성인이 된 제자의 글을 신문이나 잡지에서 읽으시게 되면 빠지지 않고 엽서로라도 격려말씀을 적어 보내셨다.

어느 해 방송을 마치고 나와 선생님 댁에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의 자부께서 ‘작년 말에 작고’하셨다고 일러주셨다. 슬프고 죄송했다. 잠시 인사전화 드리지 못 해 부고마저 못 받은 죄책감이 너무나 컸다. 그런가하면 초등학교 3학년 때 삼성초등학교에서 부속초등학교로 강제 전출된 사실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었다. 신생초등학교로 전출을 꺼리는 학생들을 달래기 위해 옆자리 짝궁과 ‘가위바위’로 결정권을 대신했다. 참으로 웃겼다.

일본 여자 담임선생은 나를 ‘가위바위’에서 배제했다. 아버지가 자기를 무시했다는 게 퇴출 이유였던 것 같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성장하셨다. 일본인의 속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옛날 사람이라 생존여부는 모르지만 결코 용서하고 싶지 않은 여인이었다. 방송에서도 그녀에 대한 내 고통을 대담의 주제로 삼은 적이 있다. 그러나 전화위복의 결과가 나타났다. 대전사범학교 무시험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아버지는 대전중학교 진학을 선택하시고 나는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지 않았다. 차석으로 합격했다고 담임선생님이 귀띔해 주셨다.  

이제 ‘스승의 날’을 차라리 ‘교육의 날’로 바꿔달라는 국민청원이 올라간 현실이다. 스승을 스승답게 대우를 하지 못 하는 처지에서 그것도 선생님들이 자기들 필요에 의해서 제정한 날도 아닌 만큼 취소하는 게 훨씬 마음 편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긴 지나친 교육열의 부산물로 나타난 ‘내 자식 일등’의 욕심덩어리 때문에 생긴 자괴감을 이참에 말끔히 씻어내는 것도 바람직하다. 진짜 선생님의 출현도 기대한다. 단순한 직장의 직업인이 아니고 덕성과 자애로 지도하시는 선생님이 숭앙되는 ‘스승의 날’을 고대한다.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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