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화면의 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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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화면의 독재
  •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 승인 2019.06.06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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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평론가)

바보상자라는 TV세트는 으뜸가는 가정 비품이다. 일상생활의 어엿한 동반자이다. 어느 누구나 가까이 하는 친구이다. 싫으나 좋으나 으레 만나는 물건이다. 그래서 첨단문화의 총아로서 누구나 자주 만난다. 뉴스를 비롯한 많은 이야기 거리를 제공한다. 고맙기 짝이 없다. 그런 TV의 화면이 요즘에 엄청나게 큰 실망의 대상이 되었다. 독재자의 행태를 부리니 말이다.

우선 광고라는 괴물로 시청자를 괴롭힌다. 어떤 프로그램의 진행 과정에 느닷없이 튕겨 나와서 눈이 먼저 놀랜다. 머리가 갑작스레 허공에 떠버린다. 이른바 ‘멘붕’에 빠진다. 제 아무런 천재도 따라잡기 힘든 발상체계의 혼란에 경악하고 당황한다. 그것도 금방 끝나는 명강(名講)도 아니다. 끈질기게 너덜거린다. 으슥한 밤 단골 술방에서 거나하게 술기운을 빌린 뚜쟁이가 앉은 자리 흙바닥에 가래침을 뱉어가며 주정하는 장면처럼 어수선한 광고 부스러기가 너무 길다. 그게 바로 첫 번째 독재가 된다.

그러다가 생각지도 않은 조무래기 말장난이 설친다. 초대한 패널의 얼굴을 클로즈업 시켜 자랑스레 평론이란 걸 서둔다.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대학의 이름을 들먹이며 초빙교수네 연구교수네 하는 레이블을 달아 시청자의 외경심을 건드린다. 명색이 교수라고 하니 신뢰와 존경을 보호막 삼아 내놓는다. 탁월하고 진정한 전공자도 아니면서 시사나 정치 문제 등을 언급해서 피부 알레르기를 불러일으킨다. PD의 주문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공로를 아끼느라 시청자의 심장을 뛰게 한다. 이 아니 독재가 아니런가. 둘째가라면 서운할 게 분명하다.

문명의 이기라는 존중과 함께 화려한 문화 장식품으로 장점이 많건만 그에 못지않게 단점도 수두룩하다. 그 가운데 시청자를 자기 멋대로 묶어두고 시청을 강요하는 무례는 그게 당장에 독재행위가 되는 것이다. 싫어도 미워도 보지 않을 수 없는 제약성이 곧 화면의 독선이요 독단이 아닌가. 그러니 독재자나 매한가지라는 독설을 들어야하는 것이다. 빈부의 차이를 넘어 TV세트는 안방이나 거실이나 가정의 어느 자리에도 군림하며 그림과 소리로 시청자의 심금을 울린다. 그러니 세 번째 독재라 아니 할 수 없잖은가.

그런 독재자 TV화면이 요 며칠 새 진짜 독재권을 발휘했다. 헝가리의 다뉴브 강 참사를 ‘뉴스특보’로 보도하고 있다. 어릴 적의 도나우 강을 아련한 추억으로 만들어준 다뉴브 강은 독일에서는 도나우 강으로 부른다. 한국인이 떼죽음을 당한 비극일진대 진정 특보로 알려줄 뉴스인건 틀림없다. 그 비극에 휘말린 당사자들에게 최대의 조의를 바친다. 언젠가 인천 앞 바다에서 낚시 꾼 몇 사람이 익사했을 때 공식 회의 직전에 사망자들에게 바치는 행사로 당시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묵념’을 호령했던 청와대가 이번에는 그런 행위가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그런 반면에 종편방송국인 YTN과 연합뉴스가 아흐레째 끈질긴 그 ‘뉴스특보’를 장시간에 걸쳐 별아 별걸 다 동원해서 방송하느라 어지간히 바쁘다. 이 또한 네 번째 독재항목이 아닐손가.

    

그나저나 그 막강한 위력을 가진 방송이 강가에서의 고기잡이 투망 같은 짓을 서슴지 않는 게 정말 독재의 진수를 보이는 꼴이다. 코미디언 김 모라는 사람이 KBS의 위신을 깎아 먹으며 엄청난 돈을 챙겨도 눈 한번 흘기는 경우가 없다. 그러다 대덕구청은 그 사람의 몇 십 분짜리 청소년강연에 천 몇 십만 원을 준다고 했다가 여론에 밀려 취소했다고 한다. 정치 몇 단이라는 박 모 의원이 시청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해도 여전히 방송에 나와 시청자를 우롱하는 소리를 제멋대로 지껄여 댄다. 그런 화면을 억지로 보게 만드는 것도 독재가 아닌가.

그런가하면 과거의 대통령에 관한 방송에서는 관습상으로 “대통령이 이러고저러고 했다”는 표현이 상식이었다. 존칭이 붙지 않았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에는 심지어 ‘대통령’을 빼고 그냥 “트럼프가 이러고 저러고”라 했다고 딱 잘라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근래 상용하는 어투는 마냥 다르다. 확 바뀌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나 나경원 원내대표도 “문재인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다”고 깎듯이 존대어를 사용한다. 다른 경우에도 그렇게 존중하는 어투를 즐겨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승만 대통령께서.....”나 “박정희 대통령께서.....”라는 표현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존대어 사용은 물론 권장할 사항이다. 헌대 시대의 변화인지 방송의 독재인지 아리송하나 존대어 사용을 강요하는 화면이 진짜 독재가 아니고 무언가.

더욱이 고령사회의 TV시청자는 채널을 골라 보는 지혜도 기능도 약화되어 있다. 87세 독거노인의 좁은 구석방에도 TV세트는 있다. 시원찮은 것일망정 노인의 가정에서 유일한 실내 친구는 뭐라 해도 고물TV이다. 그건 주야로 가까이하는 절대 친구이다. 채널선택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쩌면 고정프로를 고집하는 빈촌의 노인은 말 못할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TV의 독재에 시달린다. 뉴스특보가 아니라도 매일 화면의 독재에 불쾌, 불안, 불만을 안고 산다. 아무리 생사를 가름하는 선박사고의 특별보도라 할지라도 노인은 필경 “누구는 여섯 살짜리 어린것을 데리고 유람선을 탔건만 나는 어설픈 끼니마저 봉사 받는 처지라니.....”하며 방송의 독재에 하염없는 눈물을 흘린다. 이 얼마나 서글픈 독재런가.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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