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에 오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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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오지마라
  •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 승인 2019.06.17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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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며칠 전에 당한 일이 찝찝하다. 집 가까이에 있는 홈플러스 대형마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필요한 물건을 챙겨서 계산대에 들어섰다.

늘 하듯이 물건을 카트에서 꺼내 계산용 진열대에 가지런히 정돈해 올렸다.

그리고 빈 카트를 계산대 밖으로 밀어 내놓고 중년 여성계산원으로부터 상품대금을 확인할 참이다. 계산원이 전체 금액을 알려주려는 순간이었다.

내 오른편에 어느 키다리 남자가 불쑥 다가선다. 깜짝 놀랐다.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거무스레한 털이 난 큰 주먹이 돈을 쥐고 있는 내 손등을 얼핏 스치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더욱 놀랐던 것이다.갑작스런 현상에 놀란 가슴을 누르고 계산원에게 머뭇거리며 물었다. 내 옆의 이 사람이 누구냐고. 그러자 이 사나이가 불쑥 허튼 소리를 질러댄다.

다짜고짜 별꼴 다 보겠다는 말을 토해낸다. 그러면서 나도 계산할 거라고 내뱉는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계산원에게 질의한 내 말에 대꾸할 당사자는 다름 아닌 계산원 자신이다. 안 그런가. 난데없이 내 옆에 바짝 붙어 서 있는 사람이 누군가를 물은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대답을 요구한 사람이 분명 나이기 때문에 내게 대답할 사람은 당연히 계산원이 아닌가. 그런데도 돌연한 침입자(?)가 엉뚱하게 덤벼들은 꼴이 아닌가. 도둑당한 ‘개인의 자유공간’이 서글프다.이런 경우가 실질적인 ‘개인의 자유공간’ 침해가 아닌가. 우리의 현명한 선조들도 남남끼리 만날 때 상호간에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다. 가족 간에도 양반 댁에서는 지나치게 바짝 다가가지 않았다. 앉는 자리도 상석(Seat of honour)을 비롯해서 한자리 참석자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좌정(坐定)했다.

    

그게 점잖은 사회의 불문율 예의범절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좌대립 에티켓이 엄격했다. 사교상의 매너는 사회생활에 있어서 상대방에게 실레를 범하지 않기 위한 기본자세인 것이기 때문에 관습에 따른 행동규범을 잘 지켜야했다. 아니면 소외되기 일쑤였다. 서양에서도 일찍부터 에티켓과 매너는 사회생활의 필수요건이었다. 사교상의 마음가짐과 행동양식으로 사회문화의 한 가지 종류로 시작되었다. 옛날 프랑스에서 궁전에 출입할 때 궁전 안에서 지켜야할 예의범절이 적혀 있는 표를 나누어 주었다. 이 표에 지시된 대로 행동하면 에티켓을 지켰다고 하는 말에서 예의범절을 의미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나 남 앞에서 지켜야 할 예법이 곧 에티켓이다. 궁정 같은 곳에서는 군주를 중심으로 까다로운 예법이 지켜지고 이곳이 자연스레 예절의 산실이 되었다.

서양의 중세에는 봉건제도가 엄격히 계층화되어 있었던 만큼 예절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왕실주변이나 공식적인 행사에서 예절의 준수가 매우 중시되어 왔다.지난 6월 3일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영국왕실의 국빈만찬에 참석했다. 런던의 버킹엄 궁에서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주최하는 2시간의 국빈만찬장은 찰스왕세자 부부를 비롯해서 윌리엄 왕세손 부부 등 왕실가족(Royal family) 16사람과 트럼프 대통령가족 8사람을 비롯해 양국 주요인사 171사람이 모였다.

이 국빈만찬장을 세팅하는데 나흘이나 걸렸다고 한다. 만찬 후에 트럼프 대통령이 ‘여왕과 왕족은 모두 환상적’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만큼 대단한(gorgeous) 만찬장이었다는 사실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나보다. 헌데 여기에서 주목해야할 한 가지 대목이 있다. 만찬장의 좌석 배치는 상석(上席)이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좌석과 좌석사이의 거리가 47센티미터였다고 한다.

개인의 자유공간이 엄중하게 존중된 처사가 아닌가. 신사의 나라 대영제국다운 영광이 아닐 수 없다.그러하거늘 아무리 무식한 키다리 놈팽이라 할지라도 남이 계산대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유공간’을 함부로 침해하고도 큰소리치며 저질 욕을 거품 먹은 입(이런 작자에게는 입이라는 고귀한 언어 대신 주둥아리로 대체표현하려니 내가 부끄럽지만)으로 토해내는 꼴은 참으로 민망하고 구차하다. 그 허멀건한 작자만이 아니다. 서글플 정도로 매너도 에티켓도 없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는 넘치고 넘친다. 개개인의 친숙도가 어떻든 상호간에 ‘자유공간’은 최소 10센티미터 가량을 보장해주는 에티켓이 필요한 세상이다.

입 냄새, 음식냄새. 땀 냄새 등 맡고 싶지 않은 신체상의 기피항목이 적지 않다. 훌륭한 매너를 갖춘 양반이 되도록 ‘개인의 자유공간’을 꼭 지키는 예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부디 영국신사의 매너를 배울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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