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인정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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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인정문화
  •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 승인 2019.06.2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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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평론가)

본시 한국 사람은 인정이 많다는 말을 들어왔다. 외국인들이 흔히 인정 많은 국민으로 우리를 부러워한다. 그러건만 자칫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 게 현실이다. 사람이 본디 가지고 있는 온갖 성정을 가리키는 게 인정인데 오늘 박수현 국회의장 비서실장이 공직을 사퇴하면서 어제 오후에 가진 충청권 국회 출입기자들과의 고별 간담회 자리에서 남긴 말이 ‘인정문화’로 집약된다.

그는 “대한민국이 21세기 3만 불 소득시대를 향해가고 있는데 ‘인정문화’에 대한 의식수준은 아직도 멀었다. 전화 한 통화로 민원 청탁을 하고 안 되면 입에 담기 어려운 욕을 한다”고 토로했다. 충족시켜 주지 않은 민원을 원망하는 태도는 정말 가증스럽다. 모든 인간에게서 발견 가능한 생물적 욕구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인정욕구라는 게다. 제 말을 들어달라는 청원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게 되레 인간을 타락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찌든 현대인들의 지나치게 심한 셀카질이 아닌가.

예로부터 우리는 홍익인간을 배우고 익혀왔다. 베푸는 멋을 익히 실천해 온 배달민족이다. 너그럽게 인정을 베푸는 백의민족을 자랑스러워했다. 그게 요즈음 희석되고 타락해 가고 있다. 인지상정(人之常情)으로 우리의 마음이 남을 동정하고(sympathy) 이해하는 너그러움(compassion)을 지니고 살아왔다. 그런 미덕이 희미한 저녁노을로 변모하고 있는 세상이다. 살인과 사기와 폭력이 활화산처럼 분출하고 있지 않은가. 참으로 각박한 세월이 아닌가.

학교에서 따돌림으로 동급생을 구타해서 사망에 이르는 일이 벌어지는 형국이 놀랍다. 같은 또래 네 학생으로부터 몰매를 맞다 도망치던 학생이 옥상에서 추락 사망하는 사건은 너무나 가슴 아프다. 가해자들은 실형을 받아 인생 낙오자가 되어버렸다. 이제 법은 매우 가혹하다. 이런 ‘학폭’에서 그 광경을 구경한 학생도 처벌을 받았다. 학업과 대인관계의 영향으로 스트레스와 소외감에 시달리다 자해(自害)를 시도하는 경우도 자꾸만 늘어나고 있다. 일본의 ‘이지메’에서 시작된 학폭이 공포의 대상이 되어가니 병든 사회가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지 바른 인정문화도 있다. 스승의 날에 70대 제자들이 80대 은사를 찾아 건강을 염려하고 더불어 식사하며 추억어린 담소를 즐기는 인정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그런가 하면 90대 노은사가 80대 제자들을 불러 함께 식사를 하는 인정은 얼마나 행복한가. 엊그제 구세군사관학교 교장직을 역임하신 93세 노학자께서 대전에 있는 87세 제자 세 사람을 만나러 서울에서 우정 내려오신 일이 있다고 전한다. 구세군 서울지구 사령관을 지낸 친구가 스승 내외분과 두 시간에 걸친 오찬을 마치자 스승께서는 교통비까지 내주시고 홀연히 서울로 귀가 하셨다면서 재회의 환희와 감격한 순간을 못내 잊지 못 하고 있다.

어쨌거나 우리의 인정문화는 다채롭고 화려하다. 콩 한 알도 쪼개서 나누어 먹는다는 우리의 속언이 말해주듯 예로부터 한 동네 이웃끼리 모처럼 장만한 음식을 나눠먹는 습속은 참으로 아름다운 인정문화가 아닐 수 없다. 비록 유교문화이긴 하지만 삼강오륜을 받들어 부모를 공양하는 효도야말로 다채로운 인정문화가 아닐손가. 물론 핵가족시대로 발전(?)한 생활양식의 변화로 이제 멀찌감치 없어져가는 형편이지만 말이다. 서양문물이 사태를 이루며 우리의 옛 문화를 깡그리 망가뜨리는 세상이라 어쩔 수 없게 되는가. 시들어가는 ‘인정문화’가 아쉽기 그지없다.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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