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나 행동이 쩨쩨하고 옹졸할 때 치사하다고 한다. 때가 껴서 지저분할 때 더럽다고 한다. 두 가지가 다 고약하고 깨끗하지 않은 것을 이르는 말이다. 부정적 이미지를 나타낸다. 미국의 유명한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 ‘치사하고 더러운’ 사건이 발생했다는 보도가 있다. 백인 손님 한 사람을 위해 열여덟이나 되는 흑인이 자리를 이동해야 할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자주 발생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이런 일은 곧장 큰 뉴스가 되고 전 국민의 논란에 회자된다.
지난 10월 26일 저스틴 발이라는 사람이 생일을 맞아 친구들과 일리노이주 네이퍼빌이라는 곳에 있는 버펄로 와일드 윙스(BWW) 치킨 식당에서 만났다. 헌데 매장의 직원이 발 부부에게 ‘일행의 인종’을 물어왔다. 발이 ‘그게 무슨 문제’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백인 단골손님’이 흑인이 가까이에 앉는 걸 원치 않는다며 자리를 옮겨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그 직원의 요구를 거절하자 매니저가 와서 그들이 앉을 자리가 ‘예약석’이라며 이동을 강요했다. 발 일행은 어쩔 수 없이 매장을 나오고 말았다고 한다.
이게 바로 미국의 인종차별현상이다. 주지하다 싶이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럼 링컨이 남북전쟁을 치루면서 얻은 흑인노예해방과 인종차별철폐가 여전히 미진상태임을 말해준다. 미국의 흑인차별은 아직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흑백의 색깔이 확연히 구분되듯이 흑인과 백인이 특히 식당에서 확실히 구별되는 게 사실이다. 누가 뭐라 하지 않더라도 흑인은 백인이 둘러 앉은 식탁에 접근을 꺼린다. 그 반대로 백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유학시절 미국 대학의 기숙사 식당에서 목격한 현장이 곧 그러했다.
이 얼마나 ‘치사하고 더러운’ 광경인가.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으며 차별과 구별을 고집하니 미국사회가 얼마나 ‘치사하고 더러운’가. 백인 옆에 다가가면 “아이구, 노랑내야”를 외치는 한국인 노파의 절규에 민망했던 내 기억은 백인 스스로 자기가 풍기는 냄새를 맡지 못 하는 무감각후두를 원망할손가. 백인 전체가 그런 건 물론 아니다. 허나 그런 사람이 아주 적은 것도 아니다. 또한 흑인도 흑인 나름이겠지만 그들이 가진 고착체취가 있지 않은가. 검은 피부가 주는 이질감, 유난히 드러나는 하얀 이빨, 블그스레한 손바닥 등 선뜻 가깝게 가고 싶지 않은 색감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그게 차별의 주요 원인이라면 그야말로 ‘치사하고 더러운’ 게 아닌가.
이 ‘치사하고 더러운’ 현상은 비단 미국의 흑백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정치판의 현상은 더욱 구역질나고 엉뚱하지 않나. 당장에 국회의 청와대 국정감사가 열리고 있는 마당에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는 사람이 난데없이 버럭 소리를 내지른 사건이 다름 아닌 ‘치사하고 더러운’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우기다’의 우리말은 쌍말도 욕말도 아니다. 국회의원이 그런 어휘를 쓴 자체가 예의에 어긋나지도 않는다. 종이때기를 말아 쥐고 삿대질을 하면서 고함치는 강기정 수석은 나경원 대표에게 제 말마따나 예의범절을 한참 빗나갔다. 정말 ‘치사하고 더러운’ 작태가 한심하다. 그런 위인들이 수석이랍시고 앉아 있으니 대통령이 똑같이 ‘치사하고 더러운’짓을 해도 그 사실을 모른다. 인지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국회운영위원회에서 한나라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의 이른바 설전을 목격했을 때 ‘더럽고 치사’한 모습을 보는 고통이 너무 컸다. 그 말도 많은 조국 법무장관 임명에 관련된 민정수석실의 검증과정을 따지는 나 대표의 말에 상기된 얼굴에다 흥분을 감추지 못 한 노 실장의 모습이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앞서 본 뉴욕타임스의 미국 흑백갈등 보도에서 확연한 대조와 비교가 얼핏 떠오른다. 침착한 여성의원의 논리 정연한 질의와 불안해 보이는 남성 실장의 무질서한 답변이 엇갈리고 엉뚱하고 얼버무리는 행태가 돋보여서 더욱 ‘치사하고 더러운’ 광경이 되었다.
이런 ‘치사하고 더러운’ 모습은 어쩌면 너무 흔해빠져 일일이 나열하기가 귀찮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안보실장이라는 정의용은 ‘북한의 ICBM 이동발사 불가능’을 발설했다. 국방장관인 정경두는 그와 반대의 발언을 했다. 이렇게 따로 노는 안보관련 책임자들의 입이 ‘치사하고 더러운’것이 아니라고 정녕 우겨댈 사람이 있겠는가. 아니다. 누가 이들의 정반대 발상과 발언을 납득할 건가. 김정은이 금강산의 남쪽 시설을 뜯어내라고 협박한다. 이런 말이 도대체 어떻게 나올 수 있는가. 그넘의 지랄이라고 그냥 잘라버려 내고 말 것인가. 그 많은 소떼와 자동차를 몰고 갔던 정주영 현대그룹 총수 왕회장이 지하에서 통곡할 노릇 아닌가.
현역 대법원장의 행태도 ‘치사하고 더러운’것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가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되고 이튿날 양승태 대법원장을 찾아 왔을 때 관용차를 쓰지 않았단다. 춘천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왔다고 한다. ‘31년 재판만 한 사람’을 과시했다. 국가의 재산을 허투루 쓰지 않는 다는 인상을 강조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런 그가 공관 리모델링 과정에 과도한 비용을 사용하며 호화벽지와 커튼 등 ‘호화 인테리어 리모델링’을 감행했다. 거기에 자식들까지 공관에서 공짜로 유유자적하는 혜택을 누렸다. 초두에 보였던 겸손한 자세는 흘러간 로맨스가 되고 이제 ‘치사하고 더러운’ 대법원장으로 군림하고 있다. 너무나 역겹다. 부디 서둘러 ‘치사하고 더러운’이미지 탈피에 매진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