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28일 단독 보도한 GS칼텍스 토양오염 은폐와 관련 후속조치가 대단히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심지어 오염 정도를 축소해 정화비용을 아끼려는 GS칼텍스를 영등포구청이 눈감아 주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GS칼텍스는 서울시 영등포구 선유로 43길 일대(과거 양평동)에 대규모 저유소를 수십 년간 운영하다 1995년 사용을 중단했다. 당시 대규모 기름탱크가 묻혀 있었지만 어떻게 멸실 처리됐는지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확인이 불가능하다.
특히 이곳은 일반적인 주유소가 아니라 다른 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는 중간기지 역할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광범위한 오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GS칼텍스는 토양정화를 하지 않고 해당 부지 위에 아스팔트를 깔고 외제차 전시장 등으로 활용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토양오염 사실을 은폐한 것이다.
GS칼텍스 ‘정밀조사결과 못 밝혀’
문제가 된 부지는 본지 보도 이후 영등포구청이 정밀조사 명령을 내리면서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 오염이 확인돼 토양정화 절차를 밟는 중이다.
이와 관련 GS칼텍스 측은 해당 부지의 토양오염 정밀조사 결과를 밝힐 수 없다며 ‘우리가 알아서 제대로 처리하겠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작 토양오염 정밀조사는 기존에 용역관계를 맺고 있는 A대학 부설연구소에 맡겨 ‘을’ 위치에 있는 연구소가 ‘갑’인 GS칼텍스의 심기를 거스르는 조사결과를 내놓겠느냐며 뒷말이 무성하다.
또한 토양정화는 에이치플러스에코가 70%의 지분을 가진 컨소시엄이 맡았는데, 이 업체는 GS 허씨가(家) 허동수 회장의 차남 자홍씨가 경영하는 에이치플러스 계열의 주력사다.
대표적인 대기업 일감 밀어주기
에이치플러스에코는 설립 2년 만에 GS칼텍스의 발주를 받아 2002년부터 2010년까지 3차에 걸쳐 인천 정유공장 저유소 오염토양 정화사업을 진행했다.
에이치플러스에코의 GS칼텍스에 대한 매출비중은 최근 5년 평균 60.2%에 달한다. 지난해에도 GS칼텍스의 여수공장 토양정화공사를 맡았고 올해 들어서는 GS칼텍스의 제2폐수처리장 고도처리시설 확장공사를 수주했으며 영등포구 저유소 부지 정화 역시 맡았다.
그럼에도 GS칼텍스 측은 이번에도 “정상적인 계약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토양오염이 밑으로만 번져?
해당부지 토양오염 정밀조사 결과를 밝히지 않아 자세한 사항까지는 알 수 없는 상태지만 정화현장에 대한 동행취재에서 GS칼텍스 토양관리팀 담당자는 적어도 10m 이상 깊이까지 오염이 확대된 것으로 확인해줬다. 통상 2.5m 깊이에 기름 탱크를 묻는 점을 생각하면 7~8m까지 오염이 퍼진 것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아래로는 오염이 확산됐지만 부지 밖으로는 오염이 퍼지지 않았다는 게 GS칼텍스 담당자의 설명이다.
해당 부지 밖에서 6곳에 대해 오염조사를 했지만 오염이 확인되지 않아 부지 안에서만 토양정화공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기름성분은 중금속 등에 비해 확산되는 속도가 매우 빠르며 지하수를 만나면 더 빨라진다. 수직보다 수평으로 오염이 확산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그럼에도 내부 정화만으로 공사를 마무리하겠다는 GS칼텍스 측의 태도가 석연치 않다.
GS칼텍스 담당자는 오염토양의 양을 3만톤 내외라고 밝혔지만 토양 전문가들은 “일반 주유소 토양정화 사례를 봐도 3만톤은 충분히 나오는데, 그보다 훨씬 규모가 큰 저유소라면 적어도 10만톤은 넘지 않겠는가”라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영등포구청 역시 주민들 편이 아닌 GS칼텍스 편이라는 게 지역 주민들의 주장이다.
본지 보도 이후 토양오염에 대한 우려가 커졌지만 영등포구청은 정밀조사에 이은 정화명령을 내렸을 뿐 주변지역에 대해 단 한 차례도 조사하지 않았다. 법적인 의무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아토피부터 심하면 ‘암’ 유발
실제로 해당 부지에서 차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한 주민은 “우리 아파트 단지까지 조사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GS칼텍스에 그런 의무가 없다면 영등포구청이라도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기름성분은 휘발성이 강해 인체에 장기간 흡수되면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큰 물질이며 아토피 같은 피부질환까지 일으킨다.
기름에 존재하는 휘발성 물질은 건물 벽면의 갈라진 틈새나 포장되지 않은 땅 위로 스며들어 인체로 흡입되는 경로를 갖고 있어 선진국은 물론 우리나라 환경법에서도 매우 엄격하게 규제하는 물질이다. 이 때문에 지역 주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지만 영등포구청은 이들을 안심시키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문제의 부지 인근은 과거 운전면허시험장, 차고지 등이 입주했던 곳이어서 유류오염 위험이 대단히 높은 곳이다.
실제로 오염부지 인근 고등학교는 지하시설을 전혀 짓지 않았으며 이에 대해 학교 교사는 “학교 건설 당시 토양이 오염됐다는 소문이 광범위하게 퍼졌지만 토양오염 검사 의무가 법으로 정해지지 않아 아예 지하시설을 짓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GS칼텍스 부지만 벗어나면 오염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GS칼텍스 담당자의 주장을 지역주민들이 얼마나 믿어줄지 의문이 가는 대목이다.
변명하기 바쁜 영등포구청
영등포구청은 어처구니없게도 주민 편이 아닌 GS칼텍스를 대변하는 듯 한 분위기였다. GS칼텍스 측은 영등포구청의 명령에 따라 정밀조사를 실시해 오염이 발견됐고 이 결과에 따라 정화조치를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영등포구청이 확인 조사를 했는지 구청 환경과 담당자에게 물었으나 “법에 따라 할 바를 다 했는데 굳이 거기까지 할 필요도 없고 장비도 없다”라며 앞으로도 별도 조사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특히 GS칼텍스 부지 외부에 대한 검사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GS칼텍스가) 제대로 다 조사했으나 토양오염이 확인되지 않았다”라고 옹호하다가 나중에는 “지하에 가스, 전기 등 매설물이 많아 조사하기 어렵다”라며 GS칼텍스를 변호하기에 바빴다.
본지의 보도에 대해서도 이미 토양오염 사실이 밝혀졌지만 “GS 측과 척을 진 사람이 괜히 제보를 해서 구청만 시끄러워졌다”며 무책임한 발언을 계속했다. 아울러 그는 “민원이라고 밝힌 부분도 못 믿겠다”라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또한 GS칼텍스 부지 오염과 관련해 주민들의 민원이 있었느냐는 물음에는 “몇 차례 전화가 왔지만 직원들이 모두 알려줬다”라고 대답했다.
구청 측의 이러한 답변과는 달리 실제 주민들은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구청 측에 문의했으나 만족할만한 답을 얻지 못한 지역주민들이 본지에 전화로 문의를 한 것이다.
불안에 떠는 지역주민들
결혼과 동시에 해당 부지 근처에 집을 얻을 예정이라는 주민 A씨는 “아내의 독촉에 기사를 찾아보니 안심이 안 돼서 구청에 물었지만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환경일보가 취재를 통해 얼마나 오염됐는지, 제대로 정화했는지를 밝혀줬으면 좋겠다”라고 요청했다.
아이 엄마라고 밝힌 주민 B씨도 “앞으로도 계속 살 곳인데, 어떻게 정화를 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라고 지역의 격앙된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GS칼텍스 측은 기업기밀을 이유로, 영등포구청은 행정절차를 이유로 각각 정밀조사 결과를 밝히기를 거부하고 있다.
이와 관련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업체의 의무불이행 사실이 확인될 경우 관할 지자체 시정명령 발령 지도는 물론 해당 업체에 대한 자율적협약 해지도 검토하겠다”라며 의지를 분명히 했다.
본지는 GS칼텍스가 영등포구청에 제출한 토양오염 정밀조사결과에 대해 정보공개를 요청했고 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12월19일 결과가 나온다. 아울러 이 결과를 토대로 정확한 조사가 이뤄졌는지, 적절한 토양정화가 계속되는지를 계속 주시하고 보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