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잎 속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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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잎 속 사랑
  • 박미경 기자
  • 승인 2023.07.2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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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경 수필가
박미경 수필가

내가 살고 있는 갈마아파트는 매주 수요일 ‘수요 장터’가 열린다.
일반 서민들의 식탁에 매일 올라오는 두부,콩나물,계란,김 등등 다양한 단골 반찬 재료들로 가득하다.뿐만 아니라 사계절을 알리는 달콤새콤한 과일을 비롯해 싱싱한 자태를 서로 뽐내며 푸른 바다를 옮겨놓은 거 같은 싱싱한 생선,방금 밭에서 수확한 거 같은 신선한 각종 야채와 채소들,참기름 들기름 잡곡 등과 닭강정,떡볶이 등 간식거리 공산품만 빼고 없는 것 없이 다 있다.그래서 갈마아파트 주민뿐 아니라 근처 동네 사람들이 ‘수요 장터’가 열리면 장을 보러 많이들 오다보니 항상 북적 거리기도 하고 상인들의 후한 인심에 마치 시골장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런데 여러 상인들 중에 유독 나의 눈에 띄는 할머니가 계시다.초등학교2~3학년 정도 크기의 작은 키에 깡마른 체구,백발의 머리를 꼬불꼬불 라면이 생각나게 하는 할머니 특유의 뽀글이 파마를 하고 계신,언뜻 보아도 족히90은 넘어 보이신다.그 할머니 자리는 늘201동 신호등 바로 앞 인도가 지정석이다.늙은 오이 몇 개,양파3~4바구니,상추 조금,대파도 조금,어쩌다가 들기름2병,서리태나 보리쌀 두어 봉지 정도 바닥에 펼쳐 놓고 파신다.할머니들이 애용하시는 유모차가 옆에 있는 걸 보니 거기에 실을 수 있을 만큼만 파시는 거 같다.

할머니가 파는 야채가 그다지 싱싱해 보이지도 않고 해서 나는 거의 할머니를 지나쳐 옆에서 덤으로도 더 주시는 아주머니 물건을 애용하는 편이다.딱 한번 그 아주머니가 안 나오셨을 때 급한 대로 할머니께 대파랑 상추를 산 적이 전부다.
지난 수요일도 어김없이 장이 열렸다.
그날도 나는 우리 집 강아지 ‘인티’를 데리고 한마음공원으로 향했다.
나의 아침 루틴은 이른 새벽 공원에 나가 쓰레기를 줍고 운동하시는 어르신들과 아침인사를 나누고 아버지를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집에 가려고 막 일어서는데 아버지가 마침 수요 장이 열려서 들르실 곳이 있다고 하셔서 우리 집 방향으로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건너편에 할머니가 나지막한 의자에 앉아 강낭콩껍질을 까고 계신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신호등을 건너자마자 아버지가 내 손을 이끌고 향한 곳이 할머니였다.
나는 두 분이 잘 아는 사이로 인사나 나누시려고 하는 줄로만 알았다.
“미경아 너 필요한 거 있으면 골라봐,아버지가 사줄 께.”
“아니,필요한 거 없어요.”

극구 말렸지만 아버지는 꼭 뭐든 사야한다고 하셨다.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며 할머니께서 “아이구 아저씨,아저씨가 팔아주는 날은 어김없이 싹 다 팔리더라구요.” 수줍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아마도 수요일마다 아버지께서는 늘 여기서 무엇인가를 꼭 사셨던 거 같았다.결국 나는 아버지의 권유로 마지못해 그중 제일 괜찮아 보이는 호박잎과 할머니가 까고 계셨던 별로 싱싱해 보이지 않는 강낭콩을 받아들고 집으로 왔다.
오늘 점심 메뉴를 뭘로 해야 하나 생각하며 냉장고를 열어보다 며칠 전 아버지가 사주신 강낭콩과 호박잎이 보였다.강낭콩을 넣어 쌀을 밥솥에 안치고 호박잎을 깨끗하게 씻어 찜기에 올렸다.너무 오래 찌면 무르거나 질겨질 수 있어서 가스렌지를 켜고 켜켜이 쌓아져 있는 호박잎을 바라보며 익혀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순간 그날이 떠올랐다.
더 싱싱하고 덤으로 주는 곳을 마다하시고 꼭 할머니 물건을 사야한다는 아버지와 꼬깃꼬깃한 검정 비닐봉지에 호박잎과 강낭콩를 담아주시며 배시시 수줍은 미소의 주름진 얼굴만큼이나 쭈글거리고 야윈 손의 할머니...
아마도 아버지와 할머니는 지나간 세월의 그리움과 사람향내 가득한 따뜻 온정과 추운겨울 뜨끈하게 달궈진 구들장처럼 식지 않는 사랑을 사고 판 게 아닐까...

"눈물이 난다 이 길을 걸으면 그 사람 손길이 자꾸 생각이 난다
붙잡지 못하고 가슴만 떨었지내 아름답던 사람아
사랑이란 게 참 쓰린 거더라잡으려 할수록 더 멀어지더라
이별이란 게 참 쉬운 거더라내 잊지 못할 사람아
사랑아 왜 도망가"

임영웅의 '사랑은 왜 도망가'라는 가사이다. 가수 임영웅은 사랑이 도망감을 애석해 하며 몸부림을 쳤으나 우리아버지 사랑은 안경테 너머로 늘 다가오고 있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 살면서도 아들딸들이 많은 것이다.
며칠 뒤 ‘수요 장터’가 열리면 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람향내 가득한 호박잎 속사랑을 우리 아버지 손잡고 찾아 나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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