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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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 김용복/극작가
  • 승인 2017.03.0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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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복/극작가

2017년 3월4일 토(맑음)

맑다. 바람도 불지 않아 체감온도가 얼마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날이다.

이 겨울을 넘겼으니 두어 달만 견디면 1년을 더 살 수 있다.

늙은이들은 겨울을 넘기고 해동(解凍)을 하면 저 세상으로 가는 친구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3~5월이 문제다. 이때 떠나는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자고 일어나면 카톡문자가 날아온다. xx장례 예식장이라고. 이왕이면 성직자(聖職者)들처럼 선종(善終)이나 하면 얼마나 좋으랴..

 선종(善終)이란 선생복종(善生福終)을 줄인 말이다. 선하게 살다가 복되게 죽는다는 뜻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그러했고 성철스님이 그러했다. 이러한 축복을 받기 위해 얼마나 인간적인 고통을 견디어 냈으랴?

서로 사랑하던 연인과 만나서 행복하게 해로한다는 것은 신이 내린 엄청난 축복이다. 그 축복을 지금 나는 누리고 있는 것이다. 내 우선순위가 곁에서 숨을 쉬면서 나와 눈동자를 마주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웃으면 나도 웃는다. 그가 배고파하면 나도 배가 고프고, 그가 어딘지 아프다 하면 불안한 마음에 나도 아프다. 오늘도 쌀통을 열어 쌀 두 국자를 가득 퍼내 씻고 서리태 방콩 불린 것을 섞어 밥을 안친다.

 전열기 불판에 올려놓고 온도 9도에 맞추고 시간 8분에 놓으면 정확하게 밥이 된다. 그런데 시행착오가 있게 마련, 온도를 먼저 맞추고 시간을 맞춰야 제 시간에 전열기 불이 꺼져 밥이 타지 않는데, 시간을 먼저 맞추고 후에 온도를 맞추면 전열기 불판의 불이 꺼지지 않아 밥이 타게 된다. 그래서 밥을 태워 그날 아침밥은 서로가 굶어가며 웃은 일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 3월4일 아침.

쌀통에 쌀이 떨어졌다. 손수레를 끌고 나가려는데 우선순위도 따라나섰다. 어제 길을 걷다가 평지에서 넘어져 어깨며 팔 다리가 몹시 아프다고 누워만 있더니 따라 나선 것이다.

“왜 집에 있지.(따라나섰어?)”

‘그냥, 함께 가고 싶어서“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나도 마주보며 웃었다. 행복이 우리 두 얼굴에 스쳐 갔다. 아니, 나도 우선순위도 그렇게 느꼈다. 우리 내외는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서로가 웃는다.

슈퍼에 들어가 청풍명월 쌀 20kg짜리 한 포대를 31,800원에 사서 손수레에 실었다.

나오려는데 바나나가 노랗게 익어 구미를 당겼다. 2980원에 한 송이를 샀다. 그런데 아니 이게 웬 일? 싱싱한 열무가 한 단에 990원에 팔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미세기후를 이용해 자란 열무가 아니었다. 비닐하우스에서 농부들의 정성으로 가꿔진 열무였다. 보이지 않는 농부들이 고맙고 한없이 미안했다.

 열무 한 단을 가꾸기 위해 추운 겨우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까? 인공광을 이용한 보광재배를 하면서 이렇게 싼 가격으로 판매하다니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판매자의 말에 의하면 복잡한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 소비자에게 제공되기 때문에 생산자 역시 손해보지는 않는다 했다. 다행이다 싶었다.

“여보, 한 단 더 사자. 응?”

“이만해도 1주일은 충분히 먹겠는 걸.”

난 우선순위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다. 그가 하자는대로 하면 나도 편하고 자식들도 편하며, 밖에 나가면 내 친구들까지도 편하다. 생각해보라. 집에서 우선순위하고 다투고나면  그 광경을 보는 자식들 마음은 어떨 것이며  우거지상을 하고 다니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친구들은 마음이 편하겠는가? 그래서 우선순위만 편하게 해주면 모두가 편하고 하는 일도 잘 되며 교회가서도 하나님, 예수님 소리가 절로나와 기도도 기쁜 마음으로 하게 된다.

집에 와서 비닐 자리를 폈다. 마주 앉아 열무를 다듬는다. 칼로 작은 뿌리를 잘라놓으면 우선순위는 누렇게 시든 잎을 떼어내고 열무에 묻어있는 흙을 털어 냈다. 여기까지는 마주보고 앉아 도란거리며 했다. 씻어야 한다. 물론 차가운 수돗물이다. 다듬은 열무를 프라스틱 그릇에 쏟아서 수돗물을 틀어댔다. 손이 시리다. 우선순위가 고무 장갑을 갖다 건네준다. 젖은 손을 닦고 하는 일이 번거로워 차갑지만 그냥 씻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저녁에 오른 식탁의 열무김치는 그런대로 먹음직해 보였다. 둥근 젖산균이 나오기까지는 4~5일쯤 걸려야 하는데 우선 입에 대고 벌컥 들여마시자마자 얼굴을 찡그렸다. 열무김치에서 젓국 냄새가 풍겼기 때문이다.

"어이구..."얼굴을 찡그리며 감탄사를 쏟아냈다.

"..........?" 

"여보, 여기에 젓국을 왜 넣었어?"

"젓국 안 넣었는데"

내가  젓국에 대한 후각이 특별한 것은 우선 순위도 잘 알뿐더러 자식들도 잘 알고 있다. 옛날부터 젓국이 들어간 음식은 무엇이든 먹지 않는다는 걸 그들은 어려서부터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배추김치에도 젓국을 넣지 않는 게 우리집 식탁의 불문율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김치를 담그고 며칠 지나면 새곰새곰하게 익게 되는 데 이때야 말로 둥근젖산균이 최고로 많아져 김치속에 있는 일반 세균을 모두 잡아 먹을 뿐만 아니라 뱃속에 들어가서도 모든 일반세균을 잡아 먹음은 물론 핏속에 섞여있는 코레스톨이나 지방질을 없애버려 깨끗한 피가 온몸을 흐르게 도와주는 것이 둥근 젖산균인 것이다.

 잔소리처럼 설명을 더해야 겠다.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주부들을 위해서다. 아니, 주부들이나 홀애비, 그외에 독거하는 남녀 누구나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고 지루해도 이 부분만큼은 정독을 해야 할 것이다.

 김치를 담그면  초기에 일반 세균은 최대 10배까지 급속히 늘어나다가 다시 급속히 사멸해 버린다는 것이다.. 제 입에 맞는 먹잇감이 줄어드는데다 자신이 만들어 내는 이산화탄소가 포화 상태에 이르러 더는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 되기 때문이란다.  내 말이 아니라  30여 년이 넘도록  김치를 연구해 오며  토종 젖산균  '류코노스톡 김치 아이'를 발견해 세계 학계에서 새로운 종으로 인정받은 전 인하대 한홍의 미생물학과 교수의 말이다.  한교수는 "일반 세균과 젖산균, 효모로 이어지는 김치 생태계의 순환은 우리 생태계의 축소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산소를 싫어하는 '혐기성' 미생물인 젖산균이 2~3일지나면 활동을 개시한다고 하며. 젖산균은 시큼한 젖산을 만들며 배추․무를 서서히 김치로 무르익게 만드는데 이때야말로  젖산균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되는데, "다른 미생물이 출현하면 수십 종의 젖산균이 함께 '박테리오신'이라는 항생 물질을 뿜어 내어 이를 물리친다."고 했다. 

나는 80이 다 되도록 보약 한번 먹지를 못했다. 보약 먹을 돈이 없어서다. 그런데도 성인병은 물론 이렇다 할 병이 없이 건강하게 지내는 것은 이 김치의 둥근젖산균 때문에 그런 것이라 장담한다. 고지혈증도 없고 코레스톨도 없다. 둥근젖산균을 즐겨 먹기 때문이다.

 본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런데 우선순위가 이 열무김치에 젓국을 넣어 김치를 버린 것이다. 평생을 넣지 않다가 처음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 나는 내 우선순위가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잘 안다.

비린내 물씬 풍기는 김치국물을 뱉어내고 물로 입을 헹군다음 우선순위를 보며 서글픈 마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우선순위도 평상시처럼 미소로 응대해 주었다. 웃어주는 얼굴을 보노라니 더욱 서글퍼졌다.

그래서 오늘은 기대를 접고 금산 친구가 보내준 반찬과 제자가 옥천을 다녀오며 사다 준 올갱이 국으로 한 끼를 때웠다. 

감사했다. 젊은 시절 같았으면 화 깨나 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우선순위를 가엾이 여길 줄 아는 내 마음이 감사했고, 그런 우선순위가 곁에 있음을 고마워 할 줄 아는 내 마음에 감사했다. 실수를 하고 또 하면 어떠랴. 곁에서 함께 웃어주고 숨만 쉬는 것도 고마운데.

교회에 가고 오는 동안 그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차가 오면 함께 비켜서고, 파란 신호등이 들어오면 함께 손잡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건너가서는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무사히 잘 건너 왔노라고,

행복,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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