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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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 김지안/수필가
  • 승인 2017.03.08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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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바람결이 아직 쌀쌀하지만 햇빛이 설레도록 환하다. 모처럼 집에 있는 날이다.

겨울이불을 세탁기에 넣어 차례로 돌리고 앞 베란다에 나간다. 아파트의 베란다는 뜰이다. 햇살 아래 등나무 의자 두 개와 나무 탁자를 내다 놓고, 아쉬운 대로 나무와 꽃 화분을 놓아 작은 화단을 만들었다.

화분을 정리한다. 위치를 옮기고 시든 잎을 떼어준다. 유기농 비료를 뿌려준다. 두 개의 화분은 시아버님이 주신 것이다. 집에 들렀다 가라시며 줄 게 있다 하신다. 시댁은 1층 빌라여서 정원이 딸려 있다. 대추나무를 비롯하여 온갖 채소와 꽃 화분으로 흡사 정글 같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뜰에는 점점 더 식구가 늘어간다. 아버님이 꽃을 좋아하시는 줄 이제야 알았다. 그중 꽃 화분 두 개를 가져가라 하신다. 무거운 황토색 화분이다. 대전에서 천안까지 이동하려면 승용차에 실을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순순히 화분 한 개를 들고 오려는데 남편이 그걸 무엇 하러 가져가느냐고 내게 꿈쩍 눈짓을 한다.

나도 만일 친정아빠라면

"아빠, 무거워. 이걸 어떻게 집까지 가져가라구. 에이, 안 가져가."

이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월드 아닌가.

주겠다고 하시는 것도 감사한데 왜 그러느냐고 남편의 옆구리를 쿡 찔러 함께 들고 왔다.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진심이다. 시어머님을 일찍 여의어서 정성껏 가꾸신 화분을 챙겨주는 아버님의 심정을 헤아려보지 못했고 오히려 그래서 아버님의 사랑이 예민하게 느껴지는 감사다.

무슨 꽃이 짙은 녹색의 이파리부터 튼실하고 보기 좋게 생겼다.

향기는, 구리구리하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주민들과 함께 탔는데 좁은 공간에 자극적이고 구린 꽃냄새가 훅 번졌다. 남편은 “그러게, 버리고 오자고 했지.” 한다. 그런데 추운 겨울에도 한 묶음 붉은 꽃이 피어 잘 시들지도 않고 눈길을 끌더니 이제 봄이라고 팡팡 어찌나 잘 피는지. 꽃을 보니 임 본 듯이 반갑고 기쁘다. 나머지 화분도 가져 와야지.

다른 화분엔 키가 30cm 정도 되던 나무가 심겨 있었는데, 이제 꽤 자라 내 키를 넘었다. 아버님께 받아 온 지 10년은 되었나 보다. 소도시에서 나고 자라 식물에 대해 무식하여 이름도 성도 모른다. 너무 잘 자라 몇 차례 큰 화분에 옮겨주었는데 또 분갈이를 해야 할 것 같다. 화분이 작아 터질 것 같다. 이 적막한 산골짜기 대학가 아파트촌 어디에서 커다란 화분을 구해 오나.

    

딸이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가지치기 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미용사처럼 가위를 들고 폼을 잡으며 이리저리 잘라 놓더니 이후로 나무가 브이 형으로 자란다. 애매한 모양새다. 둥그스름해야 균형이 잡혀 보기에도 아름다울 텐데. 대신 커다란 자작나무를 구해 세워 두면 얼마나 멋질 것인가. 시뮬레이션으로 그려보았다. 숲 속처럼 아늑해질 것 같다.

'이사할 때 산에 심어주고 올 걸, 괜히 가져왔나.'

들을까 봐 혼잣말로도 못하고 어디에다 내다버릴까, 궁리를 하며 나무를 지그시 바라봤는데. 눈치를 챘나. 가을에도 온통 초록이더니 때 아닌 봄에 잎이 한 장 한 장 노랗게 낙엽이 지며 골골거리고 야단이 났다. 눈칫밥을 먹는 데려다 키운 아이 같다. 아무래도 물을 주는 내 손길이 달랐던가. 데리고 살아야겠다. 서너 해 후에 이사를 해야 할 텐데, 이고 지고 다니는 것이다.

94세. 정정하게 장수하시는 아버님이 주신 화초들도 주인을 닮았다.

나무의 분갈이를 늦게 해준 적이 있다. 화분이 좁았던 모양이다. 화분 바닥에 난 구멍으로 실뿌리를 내려 그 실뿌리가 베란다의 인조 잔디 아래를 길게 가로지르더니, 벽 모서리의 엷은 먼지에 달라붙어 잔뿌리를 내렸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런 것은 처음 보았다. 그 생명력이 뇌리에 깊이 남았다. 시간이 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영원한 이별을 경험할수록 나무의 놀라운 생명력이 떠오르곤 한다. 그 강인한 생명력이 대견하다. 내 안에도 강한 생명력을 지닌 뿌리 깊은 나무 한 그루 키워야겠다.

봄.

밤이면 새초롬한 달을 소나무 가지 사이로 한참 올려다본다. 공기에는 구수한 흙냄새가 섞여 있다. 생명이 흙 속에서 뒤채는 소리가 들려온다. 생명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땅을 밟을 때마다 생명력이 발을 통해 내 몸 속으로 물관처럼 타고 올라온다. 이 봄의 생명력을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봄꽃들이 어김없이 피어나고, 화사한 꽃구름으로 뒤덮인 벚나무를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사실만으로 행복하고 감사한 계절. 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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