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트 패밀리와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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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트 패밀리와 사진 한 장
  •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 승인 2019.08.27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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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평론가)

뜻하지 않게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무언가를 찾느라 서가를 뒤지다가 옛날 미국의 호스트 패밀리((Host family) 주인 내외분 사진을 만났다. 너무나도 반가웠다. 벌써 근 50년 전이다. Idaho주립대학교 대학원재학 중에 나를 보살펴 주신 분들이다. 오랜 동안 무심히 지내다가 사진으로라도 뵈오니 정말 감개무량했다. 아무리 망각의 동물이라 할지라도 그토록 은혜를 저버리고 지나온 세월이 너무나 야속했다. 죄를 지은 심정이다. 어디에선가 두 분이 나들이 과정에 다정히 서서 찍은 사진에서 말없이 쳐다보시는 눈길은 여전히 다정하고 포근하며 인자하시다.

못내 그리운 늦깍기 유학시절은 30대 막바지 시기였다. 한창 해외유학의 열기가 시작한 참이라 겁 없이 미국행을 결정했다. 남들보다 일찍 다녀오지 못한 아쉬움이 큰 터에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서의 인사문제로 신경이 쓰이던 판국이었다. 학생들의 반정부 집단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지는 추세였다. 유능하고 강력한 학생지도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었다. 이에 학생들의 지지와 호감을 받고 있다고 해서 학생처장 보임 문제가 거론되었다. 반정부시위가 심한 참에 그 보직은 탐탁하지 않았다. 오랜 동안 준비한 것도 아니고 아무 연고도 없지만 무작정 미국행을 마음먹었다.

미국서부의 록키산맥(The Rockies) 동쪽에 자리한 Idaho주립대학교는 우리나라 강원도 텅스턴(tungsten)의 광석표본을 자랑한다. 농과대학과 광산학과가 주요교육기관이다. 이 아담한 대학의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처음 두 달 동안 기숙사생활로 시작한 학업 중에 대학의 외국인학생 상담직원의 알선으로 이른바 ‘호스트 패밀리’를 만나게 되었다. 연방정부 고위직 공무원 출신인 그곳 농과대학 교수님의 호의로 꼭 여덟 달 동안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댁에 입주해서 넓은 독방에 머물며 조석으로 음식을 제공받고 세탁이나 승용차 이용까지 누렸다. 열 달에 마친 대학원 과정 내내 한 가족으로 지냈다.

우리가 흔히 쓰는 ‘홈스테이 가정’이라는 말로 대체되는 ‘호스트 패밀리’는 ‘민박가정’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에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말이고 그 내용이다. 미국인의 기독교적 박애정신과 강력한 자유민주주의 의식에 입각한 외국인 접대방식이다. 이런 생활방식은 경제적 측면에서만 가능한 게 아닌 것 같다. 자발적인 외국인 친화 태도에서 우러나온 혜시오 포용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간혹 이런 ‘호스트 패밀리’를 볼 수 있긴 하다. 허나 보편적인 건 물론 아니다. 얼마 전에 본 비극 ‘모자 아사’사건을 여기에 대입한다면 너무나도 각박한 우리의 현실에 비감해지는 심정을 억누를 수 없다.

복지 제일주의로 나가는 현 정부의 시책은 구멍 뚫린 도가니 꼴이다. 숨진 탈북모자의 참담한 현장은 울어 줄 사람도 슬퍼해 줄 사람도 없다. 우리 정부는 소득과 재산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 하는 국민에게 최저생계비만큼 생계비, 주거비, 의료비 교육비를 급여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게 다름 아닌 ‘기초생활보장제도’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복지 혜택이 온전하게 베풀어지지 않고 있다. 바로 이 ‘복지혜택’을 누리지 못 하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고 한다.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생활 극빈층이 적어도 93만 명은 된다는 보도가 있다. 완전무결한 정책시행은 본래 난가망한 것이지만 ‘탈북모자 아사’에서보는 참상은 없어야겠다.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지만 우선 행정당국의 치밀성과 성실성의 부족이 이런 모순을 만드는 게 아닌가. 이건 점잖게 하는 말이고 실상은 엉뚱한 누수현상이 너무 많다는 걸 알아야한다. 쌀이 남아돌아 대북지원이 필요하다는 소리가 크게 들리건만 막말과 미사일발사에 단 한 마디 말도 못하면서 ‘반일’ ‘극일’만 외쳐대고 복지 사각지대는 방치하고 있으니 이게 대재앙이요 대저주가 아니고 무엇인가. ‘포용국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가 되려면 이런 처참한 상황을 어서어서 씻어내야 한다.

게다가 법무장관 임명을 두고 매일 같이 일간 신문의 전면 서너 장이 도배되는 의혹투성이 기사는 도대체 어디서 굴러온 말 뼈다귀냐는 소리가 드높지 않은가. 의혹은 의혹을 부르고 억지는 억지를 쓰고 대들면 죽여라 아우성을 친다면 이 나라 꼬락서니는 뭐가 될 건가 도대체. 도심의 인사말은 ‘조국(祖國)이여 일어나라’가 아니다. ‘조국이여 물럿거라’이다. 이게 뭘 뜻하는가. 인사권자의 타락을 함의한다. 대통령의 아집을 비꼬는 블랙 유머(Black humor)이다. 비아냥하는 시니시즘(cynicism)이다. 인사청문회 하나마나란다. 어차피 임명장은 이미 써놓은 터 뭘 그리 야단들이냐고 꼬집는다. 대통령의 위상이 곤두박질치는 형국이 못내 아쉽다.

미국에서 얻은 ‘호스트 패밀리’의 관용과 포용과 수용이 지금의 우리 인사청문회에서도 꼭 받아들여지기 바란다. 누가 뭐라 해도 국민의 소박한 희망을 억지하지 않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이러나저러나 대통령에게 입혀진 ‘영광의 상처’는 약을 발라도 주사를 맞아도 낫지 않는다. 그 상처는 임명장 수여자나 수용자나 공평하게 맞이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많은 ‘말거리’를 축적해온 법무부장관 자리는 어차피 ‘지독한 악취(Powerful stink)’의 도가니가 될 게 뻔하지 않은가. 더구나 대통령의 심기를 틀어 쥔 듯한 ‘말의 아나키스트(anarchist)’가 앉으면 그 자리는 부득불 ‘악연(Evil destiny)’의 딱지를 붙이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제발 인자하고 온화한 ‘호스트 패밀리’의 사진 한 장속 교수 내외분처럼 화목하고 화려한 커플 이미지(Couple image)를 나누기 바란다.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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