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시민대학 후문에서 휘날리는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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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시민대학 후문에서 휘날리는 태극기
  • 김용복
  • 승인 2016.03.06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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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복작가

언젠가부터 대전 시민대학 후문 양쪽 기둥에서 펄럭이는 태극기!

그것도 한 개도 아니요 두 개씩 꽂아 활력이 넘쳐 보이게 한 아이디어.

늘 이곳 주변을 오가면서 시민대학 후문 기둥에 꽂혀있는 태극기를 보며 나는 나의 정체성과 국가관을 확인하곤 한다.

도대체 누구일까? 이런 아이디어를 창출해낸 주인공이.

정문은 물론 후문까지 태극기를 게양하여 대전 시민들로 하여금 365일 1년 내내 정체성과 국가관을 심어주는 주인공이.

눈이오나 비가 오나 꽂혀있었다. 비가 온다고 해서, 또는 눈이 내린다 해서 국가관이나 정체성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라도 하는 듯.

나는 그와 일면식도 없고 이름조차 모른다. 그러나 그가 고맙고, 그를 발굴해 이곳 책임자로 보낸 권선택 대전시장의 혜안(慧眼)에 감사하는 것이다. 그가 이곳의 책임자로 부임한 이후 얼마나 말이 많았던가? 그러나 그것은 그의 가슴 깊이 내재돼 있는 국가관이나 정체성을 모르는데서 기인한 것이리라.

태극기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의 상징, 그리고 그것을 게양하는 것은 나라사랑의 표현.

일부 정치인들 가운데는 태극기를 광화문 광장에 깔아놓고 그 위에 맨발로 밟고 올라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제를 지내는 몰상식한 일도 있었는데. 도대체 그들의 국가관이나 정체성이 사뭇 의심스럽다.그런(태극기를 우습게 보는) 그들에게 몇 가지 묻고 싶다.

대전 시민대학의 정문과 국기게양대는 물론 후문에까지도 태극기를 겹으로 게양하여 오가는 이들로 하여금 국가관이나 정체성을 생각하게 하는 행위에 대하여 어찌 생각하는가?

일제시대, 독립에 쓰일 자금을 모으고 독립 운동이 왕성했던 항일의 섬 완도, 그 섬 가운데 하나의 섬인, 의병의 마을로 알려진 소안도에 365일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런던 올림픽 축구 시합 때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3,4위전에서 일본에게 2;0으로 완승한 우리 축구 대표 팀 가운데 박종우 선수가 품안에서 태극기를 꺼내들고 런던 올림픽 축구장을 돌 때 기분이 어뗐었는가?

한국전쟁 서울 탈환 당시 중앙청에 꽂힌 태극기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던가?

‘꼭 우리 손으로 태극기를 꽂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동틀 무렵 휘날리던 태극기를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고 말하는 박정모(87) 예비역 해병대 대령. 그는 1950년 9월 26일 치열한 접전 끝에 되찾은 서울 중앙청에 처음으로 태극기를 게양했던 우리나라 해병대다. 당시 임관한지 9개월 밖에 안 된 앳된 젊은이. 그 젊은이의 말과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대평1리 배잔마을은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부터 태극기가 펄럭이는데 배잔마을의 펄럭이는 태극기를 어떻게 보는가?

 며칠 전 3,1절 국경일이 지났다.

국경일로 계산하면 채 10여 번도 안 될 태극기 게양하는 날.

요즘 젊은이들은 물론 기성세대나 심지어는 국회의원 한답시고 사무실을 얻어놓고 개소식을 하는 곳에 가보면 사무실 어느 곳에도 태극기가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한심한 노릇이다. 국가관도 정체성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랏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정치꾼들이여! 그리고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 이곳을 드나드는 시민들이여!

이곳에서 보고 배우라. 대전 시민대학 후문이다. 이곳을 지키는 원장의 국가관이나 정체성이 건물 이름마다 쓰여있고, 뒷골목 거리에도 나부끼고 있다.

태극기 말이 나왔으니 태극기에 대하여 제작과정에 대한 정보 제공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조선에는 국기가 없었다. 국기 문제로 운요호(雲揚號) 사건 등에서 일본에 곤욕을 치르고, 문호개방을 강요받은 뒤 국기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일본에 사신으로 갔던 김홍집(金弘集) 일행이 중국의 황준헌(黃遵憲)이 쓴 <조선책략>이란 책을 가져오면서부터였다. 이 책에서 황준헌은 청의 용기(龍旗)를 그대로 쓰라고 사용하라고 권했다. 이는 조선이 청의 속국임을 만천하에 알리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

그 후 태극기가 박영효가 일본에 사신으로 갈 때 만들어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지만, 그 도안을 누가 처음 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청국문답>(淸國問答)을 보면 태극기의 도안자는 바로 마건충이었다. 1882년 4월11일 마건충은 김홍집과의 회담에서 개인의견임을 전제로 조선의 국기를 흰 바탕에 태극 그림을 사용하고 주위에는 팔괘를 그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고 적혀있다.

그 후 일본 사신으로 가게 된 박영효와 그 배의 선장이었던 영국인 제임스와 조선주재 영국 총영사 애스턴의 아이디어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태극기가 중국인의 기본 도안을 바탕으로, 일본에 사죄하러 가는 일본 국적의 배 안에서, 영국인 선장의 아이디어 제공으로 제작되었다.

애석한 것은 조선 사람들에게 선보이기도 전에 일본의 뱃머리에 꽂혀 나부끼는 기구한 운명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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